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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Apr 17. 2017

그 날이에요

대자연의 마법


 다른 날들과는 다르게 몸이 좀 지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하염 없이 누워서 뒹굴거리거나 잠만 내리 잤으면 싶다. 그런 자유만이라도 허락된 삶이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눕기도 전에 어디서 굴러 들어온 먼지인지, 아이의 재채기 원인이 될만 한 바닥의 먼지들과 하필이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쌓여있는 빨래감들이 나를 반겨주고 있으니, 설상가상이다.


 아이는 배고프다고 보채며 나를 재촉하는데 왜 이렇게 몸뚱아리는 안 따라주는건지, 남이 해주는 밥이 왜 최고인지 새삼스레 또 깨닫는다. 나도 엄마가 해주던 밥 먹고 다니면서 아무 생각 없이 하고싶은 대로 하며 살던 날들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됐을까 싶다. 나보다 가족을 먼저 챙겨야 하고, 그들의 행동에 신경쓰게 되고, 이렇게 한 없이 게으른 내가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여간 벅찬 일이 아니다. 왜 어른들이 학생 시절을 그리워하는 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마냥 놀고만 싶고, 마냥 혼자 있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이따금씩 찾아오는 우울감이 어느덧 기생해 있구나 한다. 말 그대로 또 시작인 것이다. 여자의 뇌는 왜 이리도 복잡하고 예민한 것일까. 나도 누구처럼 좀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시어머니께서 장난스레 말씀하시던 여자로 태어난 게 죄라는 말이 또 새삼 와 닿는 걸 보니, 재빨리 화장실로 뛰어간다. 한 달에 한 번, 그 날인거다.


 아무도 날 안 건드려줬으면 좋겠고, 그냥 쟤 살아 숨쉬는가 보다 하며 관심도 안 가져줬으면 좋겠고, 만사가 귀찮고 짜증이 절로 나는 이 시기만큼은 가만히 혼자 놔둬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꼭 이럴 때면 안아달라고 더 보채며 내 몸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신경질을 내지 않고 참을 인만 천만 번은 외쳐댄 것 같은데 결국 욱 하고 치밀어 오른다.


 잠이라도 편히 좀 자면서 쉬고 싶은데 남편은 자기 코골이를 모르나 보다.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의 행복감은 알겠으나 나는 정말인지 혼자 편히 좀 쉬고 싶단 말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여자인 우리 엄마 뿐인 것 같다.


 오후 다섯 시 반이 다 되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자연의 마법인 걸 알고 통화조차 조심스러웠단다. 역시 엄마밖에 없다. 괜시리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냥 말 한 마디로도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라서 좋기도 하다.


 내 대자연의 마법 사이클은 참 희안하고 고통스럽다. 첫째 날부터 넷째 날까지 출산 전 진진통 초기처럼 아랫배가 묵직하고 뻑적지근 하며 허리까지 틀어진 느낌으로 아프다. 진통제 복용 없이 외출은 꿈도 못 꿀 정도로 몸이 쳐지고 또 쳐진다. 두통까지 동반하기 때문에 왠만해선 집에만 있는 편이다. 혼자 있으려는 의지가 강해지며 누군가 조금이라도 신경이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쉬이 폭발해 버리고 바로 잔다. 신기하게도 다섯 째 날부터는 컨디션 회복이 빠르며 기분도 점차 나아지고 신경도 덜 예민해진다. 식욕도 잡히고 걷고 싶어지기도 한다. 정말 알 수 없는 나만의 세계이다.


 당분간 나는 우울하고 잠만 자고 싶어질 예정이니 혼자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길 바라는 바이다.


 그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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