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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May 16. 2017

경단녀의 고민


 나는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여성(이하 경단녀)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는데, 이젠 그 마저도 자신이 없다. 영어와는 담을 쌓고 지낸 세월이 점점 길어지니 더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고민에 고민을 물고 산다.


 육지로 올라가는 것이 정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당췌 무슨 일을 해야할 지 모르겠고 두려움부터 앞선다. 영어 공부를 다시 하기엔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은데, 또 그렇게 하기엔 아이의 하원 시간 이후가 걸린다. 분명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고, 원치 않게도 아이는 나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나는 반문한다. 이 대한민국에는 정말 아이도 부모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비정규직인 이상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을 뿐더러, 적성과 이상을 쫓아 가기에는 수많은 걸림돌이 내 앞을 가로막다 못 해 넘을 수조차 없는 높이로 버티고 서 있다.


 하고 싶은 일이야 몇 가지 있다. 아이가 아픈 데도 겨우 하나 취득할 수 있었던 바리스타 자격증을 내세워서 프랜차이즈 바리스타 일자리를 구하고 싶었으나, 초반에는 일을 배워야 하기에 마감시간으로 주 업무시간이 굳혀진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내게는 당연해선 안 되는 조건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도 하원해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 시간에 나는 계속해서 부재해야만 한다면 아이의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지 모른다. 그럴려고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닌데 말이다. 다시 학원 강사로 뛰더라도 시간대가 대부분 저녁 때라 난감하기 짝이 없다. 회사에 이력서를 넣은들 야근이 힘든 나를 누가 뽑아서 써주겠는가. 진퇴양난이다.


 차라리 돈이라도 많았으면 자영업이라도 할텐데 라는 막연한 생각도 갖지만, 경기가 최악인데 자영업이라고 쉽게 될 리도 없다. 자영업도 엄연히 소기업체를 혼자서 운영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적 부담감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사가 안 되면 그 스트레스는 또 어찌 견딜꼬.


 그래서 요즘엔 생각만 많고 딱히 제대로 정해진 것은 없는 막연한 미래를 앞두고 한숨만 푹푹 내 쉬고 있다. 암담한 미래 앞에 인간은 늘 작아지지 않던가. 손 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고, 기술도 없고, 가정보육이라 무언가를 배울 용기도, 시간도, 체력도 안 되고, 정말 머리채 뜯기 좋은 요즘이다.


 생각해보면 내 의지박약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이기적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아이도 현실을 언젠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가 어디 있겠어, 이제 곧 사회성 발달 시기인데 어린이집 보내면 그만이지, 이런 생각들이 내 발목을 꽉 붙잡는다. 그러다가도 아이가 나를 껴안고 행복해 하며 '엄마' 소리를 하면,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지고야 만다. 이럴려고 내가 아이를 낳은 게 아닌데, 하면서.


 한 숨만 푹푹 내쉬며 하루하루를 킬링타임으로 보내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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