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개인정보 UI를 기획하려면
며칠 전, 버스에서 멍하니 있는데 어떤 분이 저의 시야로 들어와 은행 앱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황급히 시선을 돌린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 공공연하게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할 때면 휴대폰 밝기를 최소화하고, 두 손으로 감싸서 자체 숨김 처리를 하고 있는데요. 개인정보보호에 힘쓰는 바야흐로 빅데이터 시대, 개인정보가 어떤 UI로 제공되는지 마이크로 기획 포인트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제 비밀번호는 ****
개인정보 보호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필수불가결인 항목이 데이터 마스킹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법사 최현우 씨도 마스킹 처리된 비밀번호만 보고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 비밀번호가 맞게 입력된 것인지 본인조차도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네이버는 비밀번호의 데이터 마스킹이 강제로 제공됩니다. 반면에 구글은 비밀번호를 표시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여 비밀번호가 맞게 입력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두 기획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비밀번호가 잘못 입력되었다는 안내를 받았을 때 내가 실수로 잘못 입력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구글에서 제공하는 선택지가 사용성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여기서 더 나아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수단인 키보드까지 개인정보 보호에 동참해 줍니다. 가끔 타인 앞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할 경우가 꽤 있는데, 당연히 키보드를 가리는 게 맞지만 왜인지 상대방을 의심하는 듯 보여 괜히 눈치가 보입니다.
대다수의 은행 앱에서는 키보드의 숫자 배치가 매번 랜덤하게 설정이 됩니다. 또 국민은행 앱의 경우, 비밀번호를 누를 때 다른 번호도 같이 반응을 하여 정확히 어떤 버튼을 누르는 것인지 알기 어렵게 합니다. 물론 저도 가끔 뭐가 눌린 건지 헷갈리지만 다른 사람은 더 헷갈리겠죠?
내 이름은 김삼순
누군가에게 이름을 노출한다는 게 사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굳이 노출되어서 좋은 정보도 아닙니다. 제가 브런치 작가명을 별명으로 설정한 것처럼 어쩌면 익명의 온라인 환경에 익숙해져서 이름 노출이 왠지 찝찝하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습니다.
상단 이미지를 보면, 에이블리와 올리브영, 두 앱 다 닉네임 설정이 가능하고, 리뷰에도 설정한 닉네임으로 노출이 됩니다. 하지만, 서비스 특성에 따라 마이페이지에서는 다르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에이블리는 닉네임으로, 올리브영은 실명으로 노출됩니다. 그래서인지 디자인에서도 차이가 보입니다. 에이블리에 비교하면 올리브영의 실명은 눈에 띄는 폰트 크기가 아닙니다.
올리브영 앱에서 프로필 설정을 누르면, 닉네임이 표시된 또 다른 마이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비밀의 방처럼 말이죠. 아무래도 올리브영 앱은 오프라인에서도 같이 사용되기 때문에 오프라인+온라인용/온라인 전용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에이블리처럼 닉네임이 노출될 때는 폰트가 확실히 눈에 띕니다. 마이페이지 실명이 서비스 정책상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조금은 더 숨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우리 집으로 가자
네이버 지도 앱에서는 사용자의 집과 회사를 등록할 수 있습니다. 등록된 주소는 검색 화면에서 바로가기 버튼으로 제공됩니다. 사용자가 설정한 별명으로 개인정보를 숨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만, 해당 항목을 선택하면 검색 결과에 장소명이 바로 노출됩니다. 장소 등록이 사용성을 위한 기능일 뿐 개인정보를 숨기기 위한 기능은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용자가 등록한 장소는 자주 이용하는 주소이기 때문에 굳이 주소가 바로 노출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별명이 기본값으로 노출되고 주소 표시는 사용자의 선택 사항으로 제공한다면 주소가 노출되는 점을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소를 많이 보는 앱 중에 또 하나가 배달 앱일 텐데요. 배달의 민족에서는 주소를 간편하게 등록할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등록한 주소는 홈 화면에서 우리 집/회사/주소의 별명으로 노출이 됩니다. 물론 각 서비스 메인 페이지나 주문 페이지에서는 주소가 노출된다는 점에서는 네이버 지도와 마찬가지로 아쉬울 뻔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이용 시에 매번 위치와 주소를 선택하는 지도 앱과 달리 배달앱은 보통 설정된 주소로 서비스를 바로 이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곳곳에서 노출되는 주소가 사용자의 실수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필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개인정보 숨김 기능은 은행 앱의 잔액 숨김 기능입니다. 사실 돈만큼 민감한 정보는 없죠.
/ 23.11.05 | 24.07.29 최근 글과의 톤을 맞추기 위해 쓸데없는 말은 지우고, 레이아웃도 수정했습니다.
/ 썸네일 : 미드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