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경 4] 시제품 스무개로 수출에 성공하다 최종편

by 트루브무아

시제품 스무개를 만들어 바이어를 만나겠다고 무작정 프랑스로 두달간 떠난 나,,,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믿도 끝도 없는 무모한 모험이었지. 그때 나는 제품을 만들어 본 적도 팔아본 적도 마케팅을 배워본 적도 없는 열정만 가득한 풋나기였어. 지금 생각해보면 뭘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 창업 이후에는 그런 무모함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더라구. 알면 알수록 못하는 것들만 많아져갔어. 어쨌든 경험도 지식도 돈도 없던 내가 어떻게 시제품 스무개로 바로 수출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가 볼게.


전시회장에서 망연자실한 채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제 뭘 해야하나 고민하던 중 만나게 된 두 명의 프랑스 여자분들을 통해 영화같은 일이 벌어졌어. 프랑스 메이크업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품에 대해 발표를 하게 되다니 말이야. 프랑스에 가자마자 제품 자료를 만든게 신의 한수였어. 며칠을 공들여 만든 제품 파워포인트 자료 그리고 유학시절 프랑스어로 논문 발표를 했던 경험도 한 몫 했지. 발표를 마친 후 학생들과 제품이름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눴어. 그 당시엔 브랜드 이름만 짓고 제품명은 없었거든. 그렇게 잊을 수 없는 멋진 시간을 보내고 두 분한테 소개받은 수출 컨설턴트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았어. 프랑스에 도착해서 무슨 기회든 만들어 보려고 당시 유명한 프랑스 유튜버에게도 컨택을 해 봤었고 K 뷰티를 컨셉으로 한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대표에게도 연락해 봤었어.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지. 늘 큰 기대를 거는 일들은 이루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다는 걸 알기에 이번 만남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어. 다만 그 사람이 자신의 소개 메일을 보내왔을 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리어를 가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네. ‘나도 저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생각한 인상적인 프랑스 브랜드들이 있었는데 그 두곳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고 심지어는 두 브랜드의 초창기에 참여했었다는 것도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브랜드가 커가는 과정에 함께 한 거니까. 당시에 화장품 업계에서 20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니 나에게는 회사 팀장급 이상의 경력자였지. 나의 회사 경력은 고작 5년 이었는데 말이야. 게다가 나보다 스무 살이 많았어.


그렇게 파리 몽마르뜨에 살고 있었던 그녀의 집으로 초대받아 떨리는 마음으로 첫 인사를 나눴어. 나는 먼저 파워포인트로 만든 제품자료를 보여주며 하나씩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어. 그리고 프랑스 친구들과 촬영한 제품 사용방법 영상도 보여줬어. 나는 내 아이템에 확신이 있었고 제품의 장점과 차별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설명해 나갈 수 있었어. 화장품에 열정이 많았던 그녀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 수록 비슷한 부분도 많았고 통하는 것도 많다고 느껴졌어. 만나자마자 쉴 새없이 3-4시간동안 이야기를 이어나갔어. 처음 만난 사람과 어떻게 그렇게 오래 이야기할 수 있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화장품, 창업, 브랜드라는 공통의 주요 관심사와 추구하는 방향성이 맞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당시에 그녀는 깐느에서 열리는 화장품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어. 내가 가져간 시제품과 처음 접하는 화장품 컨셉이 마음에 들었던 그녀는 나에게 전시회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어.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고 함께 브랜드를 소개하기로 한거지. 이게 바로 동업의 시작이었어. 이 모든 게 처음 만난 날 결정된 일이라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창업도 모자라서 동업이라니,,,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들이 벌어진거야. 전시회까지 열흘 남짓 되는 시간동안 브랜드 책자를 만들고 진열대와 함께 장식할 소품들을 준비하고 바이어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어. 깐느 영화제와 같은 행사장에서 열리는 면세품 박람회(TFWA World Exhibition)였는데 많은 중소브랜드들이 행사장 주변 호텔을 빌려 쇼룸을 만들고 바이어들을 초대해 미팅을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어. 우리도 행사장 바로 맞은 편에 몇몇 브랜드들과 공간을 빌려 미리 약속된 바이어들을 만난거야. 나의 동업자는 당시 이 행사를 준비중에 있었고 때마침 나를 만나게 된거지. 다행히 바이어들의 반응이 좋았어. 단 세개의 컬러를 가진 단일 품목이었지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쿠션 화장품이라는 컨셉이 흥미로웠을거야. 가져간 시제품들을 알뜰하게 나눠줬고 성공적으로 전시회를 마쳤지. 그리고 나는 그 길로 한국으로 들어와 생산을 시작하게 된거야.


이름조차 없는 시제품을 가져가서 수출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한국 화장품의 위력 덕분 이었다고 생각해. 비비크림으로 전세계에 돌풍을 일으킨 K뷰티 대한민국에서 이번에는 쿠션 화장품이라는 혁신적인 발명품이 만들어진거고 나는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활용한거지.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 건설을 위해 영국에 차관을 유치하러 갔을 때 오백원 짜리 지폐에 있는 거북선을 보여주며 당신들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나도 마음만은 정주영 회장님 못지 않았다고 생각해 ^^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내가 그때 가졌던 확신이 아니었을까 싶어. 나는 확신에 차 있었고 어떤 의심이나 두려움도 없었어. 그러니까 가진 게 없어도 당당할 수 있었고 사람들도 그걸 느꼈던 것 같아. 주저하지 않고 잡은 기회들이 또 다른 기회를 끌어와주고 나는 또 그 기회들을 잡은거지. 어떤 사람들은 내가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 틀린 말은 아니야. 그래도 난 다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 어떤 기회가 좋은 기회인지 계산하다가 기회를 날려버리느니 내가 잡은 기회들이 더 많은 기회를 끌어오도록 만드는게 처음 창업할 때 필요한 노력이라 생각해. 많이 잡아봐야 좋은 안목과 기준도 생기고 기회를 만들 능력도 생길테니까.


전시회에서 만난 두 여성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시제품으로 깐느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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