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경 20] 허무함을 건너는 시간

by 트루브무아

나는 뭐든지 과하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야.

그래서 가끔은 더 깊은 허무함이 찾아오곤 했었어.
뭔가를 정말 진심으로 했다는 게 오히려 더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아는데,
그땐 그걸 견디는 게 참 어려웠어.


창업 초기에는 지금보다 더 순수했어.
처음 함께했던 동업자가 판매할 제품을 유럽에 보내고,
나는 한국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켜가며 신제품을 만들었지.
대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저 믿음 하나로 3년을 버텼던 것 같아.
이게 옳다고, 곧 잘 될 거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돈을 떠나,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참 많이 부딪히고 노력했어.
결국엔 3년의 전쟁같은 시간을 지나 내게 남은 건

겨우 0으로 만든 미수금, 빚으로 고스란히 남은 창업 대출금
그리고 고장난 마음이었지.

6년간 모든 걸 쏟아부은 결과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처참했어.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지금까지 애쓴 것들이 다 의미 없어진 것 같았어.
심지어 “내가 멈추면 다 괜찮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알겠더라.
허무함은 그럴 때 가장 조용히, 그리고 가장 깊게 찾아왔어.


그래도 그런 시기를 통과하면서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어.
허무함은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는 거.
오히려 애썼다는 증거고, 진심이었다는 징표야.
대충 살았다면 그런 감정조차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그 감정을 억지로 떨쳐내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잠시 멈춰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조금씩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는 뭔지.

그 허무함은 결국
내가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게 도와준
중요한 힌트였어.


창업한지 1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주기적으로 허무함을 마주해.

허무함의 이유들은 모두 다르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보면 참 많이 애썼던 것들이긴 하더라.

지금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허무함을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받아들이게 된 점인 것 같아.

허무함이 밀려오려고 할 때면

'아,, 내 체력이 떨어진 상태구나,, 좀 천천히 가야겠다' 라고 자각한다던지

이 경험과 노력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배웠고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가면 좋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


미래야,
너도 살아가다 보면 분명 그런 순간이 찾아올 거야.
열심히 했을수록 더 마음이 꺼지고,
'내가 이걸 왜 했지?'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럴 때는 네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만큼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야.
그 감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괜찮아.
시간이 조금 흐르면
그 허무함 속에서도
다시 걷고 싶은 길이 보일 거야.

애쓴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아.
단지 그 의미가 당장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러니까
힘들 땐 너무 애써서 버티려 하지 말고
조용히 마음을 내려놔도 괜찮아.
그 허무함이 너를 집어삼킬 수는 없으니까.
너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거고,
그때의 너는 분명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멋질 거야.


사랑해.
그리고,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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