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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오 Nov 18. 2021

선빵 필승

눈치게임

같은 인사팀 입사 동기가 있었다. 

고려대 행정학과를 나와 용/교육파트로 배치된 동생이었다.


학벌이 좋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엑셀에 수식을 걸 줄 몰라서 죄다 값으로 넣었다고 한다.

엔지니어 채용을 하면서 기술팀과 개발팀 면접인데 면접 타임을 팀별로 안 나누고 학교별로 나눠서 집어넣었다고 한다. 심지어 대표이사 최종면접이었다.

야근하다 말고 여자 친구 달래줘야 한다면서 튀었다고 한다. 자신은 사랑이 더 중요하단다.


입사 6개월이 되었을 때 팀장은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제 입사 6개월이면 신입사원 아니야. 이제부턴 너도 기획해야지.


그렇게 입사 첫 해부터 승진, 평가, 보상을 전담했다. 어째서인지 인사팀장과 경영지원 본부장에게 다이렉트로 보고를 하는 처지가 됐다.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그 채용/교육파트 동기의 사수가 뚜껑이 열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실수를 하고, 야근하다 말고 도망을 치니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교육담당 선배는 팀장에게 달려가 도저히 저 친구랑은 일을 못하겠으니 나랑 바꿔달라고 했다. 그리고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야 이제 1년 겨우 지난 애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냐?


퇴사하기 6개월 전부터 일이 너무 많았다. 주 7일 근무에 평일 새벽 3시 퇴근, 주말 저녁 9시 퇴근이 반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러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이직을 했다. 이직 면접 제의가 올 때마다 내가 걸었던 조건은 하나였다. 연차 못쓰니까 평일 퇴근시간 이후나 주말에 면접 봐야 한다고. 정말 면접도 보러 가기 힘들어서 연차는 고사하고 저녁 6시에 병원 간다고 하고 나와서 면접을 보고 다시 들어가서 일을 했다.


이직이 확정되고 나니 이제 인수인계가 문제였다. 결국 충원하지 않고 채용/교육파트 동기가 내 업무를 전담하고, 기존 채용과 교육업무는 기존 인력이 떠안기로 했다.


그렇게 동기에게 인수인계를 한지 겨우 이틀이 되던 날 그 녀석은 너무 일이 어렵고 많다면서 울었다.

형 저 못하겠어요

그리고 그날 그 동기 녀석은 점심시간에 사직서 한 장을 팀장 책상 위에 올려두고 튀었다.


오늘도 회사생활은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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