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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Nov 08. 2018

엄마의 :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엄마의 20대, 40대, 그리고 지금을 흐르는 빛과 같은 선율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1월 친구들과 통영 가던 차 안에서, '리처드 용재 오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릿한 슬픔이 배어나는 그의 연주를 언제고 꼭 함께 들으러 가자 했는데, 의외로 기회가 바로 찾아왔다. 비올리스트의 연주회는 처음인 데다, 오랜만의 클래식 음악회여서 가기 전부터 내내 설렜다.

용재 오닐의 아픈 가족사에 감정이입을 심하게 한 탓인지, 무대 위 열정적인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려니 애절하고 구슬픈 비올라 선율이 가슴 속으로 마구 휘몰아쳐 들어왔다.


예전에 레코드 가게를 할 때, 어떤 손님이 꼭 구해 달라던 음반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게를 했던 1980년 초반엔, 손님들이 주로 사가던 클래식 음반이 거의 정해져 있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유명한 교향곡이나, 누구나 알만한 몇몇 협주곡 또는 귀에 익숙한 소품 모음집들을 찾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이 별로 찾지도 않고 잘 안 팔리는 곡들은 음반 도매상에도 없을 때가 많았다. 필요한 음반이 있을 땐 따로 주문을 해야 했는데, 음반회사 카탈로그에는 실려 있더라도 재고가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끔 그런 곡들을 주문해 보면, 길게는 몇 달 뒤에 오는 경우도 있었을 만큼 그땐 음반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손님이 특별히 구해 달라던 곡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Arpeggione Sonata)였다.

내가 레코드 가게를 했던 약 2년 동안, 그 곡을 찾았던 손님은 그분 외엔 거의 없었고 제목도 나는 그때 처음 듣는 곡이었다.

흔하게 찾는 곡이 아니었으니 주문해도 보나 마나 없을게 뻔해서,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아예 못 구할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 손님은 그 곡만 실려 있다면, 오리지널 원판이든 국내 생산이든 상관없다며 무조건 구해 달라고 기다리겠다 했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뒤 드디어 그 음반이 도착했고,

나는 대체 어떤 곡이길래 그렇게까지 꼭! 구해 달랬나 궁금해서 한 장을 뜯어 들어보았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연주로 듣게 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우수에 찬 듯 서정적이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그 손님이 오래 기다릴만하다 싶었고, 나 역시도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의 매력적인 멜로디에 빠져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가냘프고 섬세하게 "심금을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가 최고라 여겼었는데, 이곡을 들으면서 그날 처음으로 첼로도 상당히 매력적인 악기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나이 들면서부터는 바이올린 소리보다 첼로의 음색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된 게 바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였던 것 같다.


2003년 무렵 퓨전초밥집을 운영할 때, 오후 아르바이트생 중에 첼로를 전공하는 경원대 남학생이 있었다.

생선초밥은 비가 오면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는 음식이다. 궂은 날씨에 생선의 식중독을 염려한 탓이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은 거의 개점휴업인 상태로 시간을 죽이곤 했는데, 그날도 며칠째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밤이었다.

손님도 없는 텅 빈 가게에서 마냥 앉아 놀기가 미안했던지, 그 학생이 느닷없이 "사장님~ 손님도 없는데 제가 첼로 연주나 한번 해볼까요?"

"혹시 뭐... 듣고 싶으신 거 있음 얘기해 보세요" 했다.


그동안 아이들 키우랴 가게 하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차분히 앉아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건 고사하고 일체의 문화생활 따윈 가까이할 엄두조차 못 내고 바삐 산지 수년째였다.

내가 무슨 곡을 좋아했는지 또 지금 뭐가 듣고 싶은지조차 아무 생각도 안 날 정도로, 그냥 멍멍한 상태로 말이다.

그런데 그 학생이 가게 한편에 세워둔 하얀 첼로 케이스에서 주섬주섬 악기를 꺼내는 걸 보는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어두운 밤, 가게 유리창 너머로는 궂은 비가 세차게 나리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의 바로 내 눈앞에서 오롯이 첼로 혼자, 활이 현에 닿아 부비는 미세한 소리까지 다 들려오던 그 감동이라니...!!!

스무 평 남짓 작은 공간을 꽉 채우며 울려 퍼지던 첼로의 선율은 눈물 나게 아름다웠고, 내 가슴은 터질 듯 벅차올랐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아직 한참 배우는 중인 대학생의 연주였으니, CD로 듣던 유려한 연주들과는 달리 말할 수 없이 투박하고 거친 연주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껏 그 어떤 대가들의 연주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소름 돋는 감동과 희열을 느꼈다.

아마... 그때 나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힐링'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돈을 벌러 나섰던 저잣거리에서 그런 낭만적인 호사를 누리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그땐 미처 몰랐지만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날만큼은 비 때문에 안 오르는 매상을 걱정하기보단, 비가 와서 오히려 행복한 밤이었고 깨어나고 싶지 않은 아쉬운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날 이후 속닥하게 첼로 연주가 듣고 싶어 질 때면, 가끔은 폭우가 쏟아지길 내심 기다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바쁘고 힘들었던 일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한줄기 빛처럼 마치 선물 같았던 그때 이후로, 나는 때때로 서점에도 들르고 운동도 시작하는 등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그렇게, 내게 잊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곡이 되었다.


연주회에 가기 전 용재 오닐의 연주를 들으러 유튜브에 갔더니, 반갑게도 그가 연주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있었다.

주로 첼로로 연주되곤 하는 이곡을 용재 오닐이 연주하니, 첼로 못지않게 오히려 첼로보다 훨씬 더 시리게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러다 보니 티켓팅 후 지난 한 달간, 이번 연주회의 레파토리도 아닌 이곡을 틈날 때마다 몇 번이나 듣고 또 들었다.


용재 오닐이 연주하는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듣고 있으면, 들을 때마다 언제나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것은 이 곡 자체가 주는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 때문에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용재 오닐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개인적인 외로움이나 아픔들이 승화되어, 그런 절절함이 배어나는 연주를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한(恨)이라 불리우는 슬픔이 가슴 밑바닥에 깔린 한국인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의 연주에는 이래저래, 처연함이 묻어날 수밖에 없을 것도 같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곡이...

내가 맨 처음 이 곡을 들었던 이십 대 중반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지나간 시간들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혹은 그런 추억들을 자꾸만 붙잡고 싶어 하게 된 내 나이 때문에, 더 그렇게 들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마음 깊은 곳까지 흔들어대는 용재 오닐의 연주에 이끌려 연주회를 기다리던 하루하루는 행복했다.

나아가서 이루 말로 다할 수없이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준 오늘의 연주회 역시도 너무너무 좋았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독주회마냥, 심지어 앵콜곡까지 열정적인 연주를 해준 피아니스트 '스티븐 린'도 박수세례를 받아 마땅했다.

덧붙혀, 싸인 받으려고 줄 선 관객들이 백여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도, 그다지도 선한 얼굴로,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고 친절하게 웃으며 이름을 묻는 용재 오닐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흐뭇해졌고, 내 나이 환갑 넘어서야 아이돌에 열광하는 속칭 '빠순이'들이 진심 이해되더라는...^^

아름다운 사람,

Richard Yongjae O'Neill.


https://www.youtube.com/watch?v=S0YLqYI6x1A&sns=em

리처드 용재 오닐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연주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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