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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Oct 30. 2018

엄마의 : 영화 ‘죽여주는 여자’

결국 설득되고야 마는 배우 윤여정 씨의 깊은 얼굴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수년 전 어느 해 겨울, 배우 윤여정씨와 H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검은색 계통의 수수한 코트를 걸치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몹시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느낌을 받게된 건.
마치 가녀린 작대기에 옷가지를 걸쳐 놓은듯 그녀의 몸피가 너무 깡말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하고, 쌀쌀했던 계절 탓일수도 있다.
아니면 대중에게 알려진 그녀의 결혼생활 때문에, 그녀의 삶이 뭔가 쓸쓸할 것이라 지레짐작해서 그랬던가 싶기도하다.

외견상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이나 느낌이 어떻든지 간에, 윤여정씨에게는 그녀만의 묘한 아우라가 있다. 그 나이대의 다른 여배우에게선 결코 찾아볼수 없는, 진정코 독보적인, 딱히 뭐라 설명할수는 없는 그런 무언가가 있다.
그러한 그녀를, 나는 오래전부터 몹시 좋아해왔다.
그 시대의 다른 여배우들과는 차별화된 매력적인 외모로 한창 샛별처럼 떠오르던 신예 여배우였음에도, 남자한테 꽂혀 바람처럼 미국으로 떠나버렸던.
데일듯 뜨거운 열정을 가진 그녀가, 나는 좋다.

불행한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그녀가 브라운관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이혼의 상처를 잊으려는 과도한 술담배 때문에 목소리가 상해 버렸다며 세상이 쑥덕거렸었다.
그러나 나는, 낮게 깔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잔뜩 심통난 듯 퉁명스러운 말투가 독특해서 오히려 더 좋았다.

재수없이, 처신이 깔끔치 못한 남자 만난 탓에 이혼후 생활고로 고생하던 와중에도. 결코, 이혼의 전후사정과 상대방에 관해 쓰다달다 단 한마디도 않는 그녀가 시크해서 좋았다.
바람둥이 전남편이 아이들 생일이라는 숫자를 덕지덕지 새긴 옷을 입고 방송에 나와, 다 늙어 뒤늦게 시덥잖은 애비행세를 하건말건.
아무런 미동조차 않는 그녀 또한 말할 수 없이 멋지다.

그녀가 이혼했던 80년대 중반은, 여배우가 결혼만 해도 인기가 급속히 떨어지던 시대였다. 하물며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단 그녀가 생계형 연기자로 살아오는 동안, 견뎌내야 했을 세간의 따가운 시선들이 어떠했을지는 ...
그런데도 마치 단단한 갑옷을 두른듯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늘 당당한 채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그녀가 한편으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녀의 진정한 속내는 어떠할지, 어떻게 문드러졌는지 아니면 진정 평온한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열심으로 살아나온 그녀를, 나는 진심으로 좋아하고 응원한다.

그런 그녀가 단순한 돈벌이의 수단이 아닌, 사치를 누리는 마음으로 작업했다는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보러갔다. 이 영화는 의탁할 곳 없는 가난한 노인들 포함 소외된 우리 이웃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섹스를 '죽여주게' 잘한다 알려진 박카스아줌마 '소영'이, 마침내 실제로도 사람을 '죽여주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기 훨씬 전부터도, 탑골공원을 떠도는 빈곤층 남자 노인들과 속칭 '박카스 아줌마'는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였다.
늙어가는 육신과는 달리 여전히 시들지않는 욕망을 어찌할 수 없는 남자 노인들에게, 겨우 박카스 한병값에 성(性)을 파는 빈곤층 늙은 여성들인 박카스아줌마는 어쩌면 필요악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공공연한 거래는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외면해왔던 우리사회의 불편한 단면이기도 하다.

노인 매매춘과 박카스 아줌마를 전면에 내세웠고, '죽여주는 여자'란 제목까지 붙었으니. 그만큼 섹스를 잘한다는 걸로 충분히 오해할 만 했고, 영화내용이 꽤나 자극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예상과는 달리, '박카스 아줌마'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낯뜨겁고 천박하게 성에 집착하는 늙은이들의 얘기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재용감독이 작심하고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는 한편의 돌직구같은 영화라 할까.

이재용 감독은 한때,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상당히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영화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감독 아니었나. 그랬던 그가 "몇십만 돌파"도 그리 호락호락할것 같잖은, 이렇게 돈 안될것 같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니 용기가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내내.
결코 간단찮은 내용으로 상당한 문제제기를 하고있는 이감독에게 가장 큰힘을 실어준 것은, 범접하기 어려운 포스를 가진 윤여정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영화의 주인공인 매춘부 '소영'역에, 배역에 딱이다 싶게 가벼운 이미지의 배우나. 윤여정씨보다 무게감이 덜한 다른 여배우가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아마도, 저급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박카스 아줌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저 그런 영화. 또는 제목 때문에 야릇한 상상을 하고 왔던 관객들이, 실망스런 표정을 짓고 나가는 별 볼 일 없는 영화로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가 주는 울림은, 전혀 지금같지 않았으리라.
감독은 '죽여주는 여자'를 통해, 가난에 맞딱뜨린 빈곤층의 삶과 죽음. 소외된 이웃이라할 퇴물매춘부, 다문화가정, 코피노, 트랜스젠더 등등 이루 다 열거하기도 힘든 우리사회의 아픈 구석들을 건드리고 있다.
그런것들 모두가 사회구조적으로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이감독은 보여주고 싶었던것 같고, 그가 하고싶은 얘기들은 윤여정씨의 깊이있는 연기력 덕분에 한층 더 묵직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다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아직은,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것을 돌아볼 여력이 없어 보이는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죽여주는 여자'를 통해, 이런 민감한 사안들을 감독이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한들. 박카스 아줌마와 탑골공원의 노인들로 대변되는 취약계층의 삶과 죽음이, 하루아침에 특별히 달라질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해서 언젠가 노인들의 삶과 죽음에 관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프랑스영화 '아무르'처럼, 이 영화도 너무 현실적이라 막막하고 암담해져서.
엔딩 부분에 이르니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입소문이 많이 났으면 좋겠다.
당장은 아무것도 변할게 없을 것 같아 답답하긴 해도, 지금 이 시대를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보고 생각할만한 상당한 의미가 있는 영화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덧붙혀. 참으로 비천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소영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따뜻한 눈길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가 눈 감고 있는 동안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곪아가고 있는 각종 사회 문제들에, 이 영화를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면.
그것이 비록 일과성에 그칠지라도, 미미하게나마 그런 반향을 불러올수만 있다면.
'박카스아줌마'들 포함 빈곤- 소외계층을 위한 정부차원의 제도적인 대책마련을 꿈꾸는 윤여정씨의 (쉽지 않아 보이는) 바램도,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질수 있지 않을까.

"어미라서... 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크던 작던 무슨 역할이든 가리지 않았고, 그것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당당히 말하는 그녀야말로, 실은 말 그대로의 진정한 '죽여주는 여자'가 아닐까.
한때는 생계의 수단이었으나 이제는 '배우' 일을 하며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는 그녀는, 천상 배우요. 이래저래 멋진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그녀는, 자신을 짓누르던 삶의 무게에서도 어느 정도는 홀가분해진것 같아 보인다. 그러니 그녀의 뒷모습은, 더는 쓸쓸하거나 추워보이지 않을것이다.
'죽여주는 여자'로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그녀의 남은 날들에, 사랑과 기쁨들이 넘쳐나길 바라며.
진솔한 그녀의 연기를 아주 오래도록 만나볼수 있기를!



* 영화가 개봉된 2016년도에 작성된 글입니다.

* 소제목은 김성훈 평론가님의 평론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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