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 번째 목표는 이혼하지 않기
같이 공부하는 분들로부터 내가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아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그 이유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도 있고, 나에겐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재의 가정이 불안정하게 느껴지기 때문도 있다. 언제라도 끝날 수 있는 가정, 내 기반. 그래서 나는 언제든 홀로 설 수 있는, 당당하게 멋지게 홀로서도 좋을 환경을 준비하고 싶다.
24년 12월 여느 해처럼 새해 준비를 했다. 꼭 달성하고 싶은 세 가지를 새해 목표로 정했다. 그중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내 일, 돈과 관련된 목표다. 세 번째는 가정과 관련된 것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기'다. 새해의 목표가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기라니, 우리가 얼마나 자주 싸우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실은 단순히 싸우지 않기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싸우지 않으면 당연히 좋겠으나, 그보다는 이혼하지 않기에 가깝다.
두 번째 이혼은 무게가 다르다. 첫 번째는 당당한 나로 돌아가야 하는 당연한 수순처럼 순조롭고 빨랐는데, 두 번째는 다르다. 아이가 커가며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더 늘기도 했고, 한 번은 '똥 밟았다' 하며 넘길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안된다. 두 번째는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남편과 사이가 좋은 상태임에도 여전히 내게는 '이혼'이라는 두 글자가 언제라도 앞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초혼 부부들은 안 그럴까? 그들에게는 '함께'만 있는 걸까? 난 알지 못하니 무척 궁금하다.
첫 번째 이혼은 자의식 과잉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왜?" 끝내는 게 쿨한 거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후 재혼생활은 훨씬 더 힘들다는 걸 안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버티는 게 멋진 거다. 속세를 떠나 수행하는 것보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수양하는 삶이 훨씬 어렵고 값지다고도 하지 않는가. 그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날 스터디모임이 끝나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매번 관심사가 바뀌는 분에게 스터디 리더가 해준 말이 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습니다." 리더도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기억하지 못했으나, 이 짧은 말은 나에게 커다란 여운으로 남았다. 어릴 때의 내가 딱 그랬었다. 20대 중반 나의 새해 목표에는 언제나 '선택과 집중'이 따라다녔다. 왕성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결국 끝까지 파낸 게 없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는 말은 내 삶과 결합되어 자주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돌아보니 정말 그렇다.
힘든 직장생활을 피했다 생각했던 결혼생활은 윤택해 보였으나 이혼하고 나니 결국은 내 것이 아니었다. 잦은 출장으로 내조를 원했던 전남편과 의견이 일치해 그만둔 것이지만, 그때의 나는 결국 내 것을 포기하고 남에게 의지하려 한 셈이다.
사랑해서 한 결혼은 대체로 행복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육아는 상상이상으로 고됐다. 육체뿐 아니라 오롯이 '나'로 존재하던 내가 '누군가의 엄마'로만 있어야 하는 순간들은 버거웠다. 돌아보면 그때 힘든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결국 힘들어서 이혼한 거라고도 생각한다. 힘들어서 저질러진 싸움에 속전속결 이혼, 나는 첫 번째 결혼에서도 도망친 셈이다. (물론 다시 돌아가도 이혼할 것이다.)
그리고 현 남편과의 재혼, 정말 녹록지 않다. 아이를 데리고 재혼만은 하지 말라던 언니들의 인생 조언을 나는 또 부딪혀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주위에 누군가 아이를 데리고 재혼을 하려거든 말리고 싶다. 내 삶이 정말로 말해준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두 번째 이혼은 쿨하지 못하다. '다시 홀로서기' 파일까지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남편의 손을 다시 잡고 한 번 더 고비를 넘긴다. 지나고 나니 그게 다 고비였을 뿐이고, 나는 넘겼을 뿐이다. 언제까지 넘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벌써 올해가 채 세 달도 남지 않았다. 조금만 버티면 일단 올해의 세 번째 목표는 달성이나 마찬가지다. 사이가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