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가여운 남편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첫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나 역시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이라, 그 사이 만료된 여권도 새로 발급받았다. 나는 아이들과 제주도에 가고 싶었는데, 남편은 무척이나 해외여행을 원했다.
남편이 첫 해외여행을 언급한 건 작년이었다. 같은 회사 선배가 괌에 다녀왔는데, 엄청 좋았다는 이야기였다. 올해 여름, 선배가 한 번 더 괌여행을 예약했다고 우리에게도 추천했단다. 그러더니 우리도 가볼까? 했고, 난 별 대수롭지 않게 알았다고 했다.
여름휴가를 거른 뒤, 남편은 해외여행을 가자는 얘기를 다시 꺼냈다. 나는 요즘 새로 벌인 일도 있고, 돈을 더 바짝 모으고 싶어서 이야기를 미뤘다. 조금만 더 참고 일이 더 조금 안정되면 가고 싶었다. 남편은 진심으로 가고 싶어 했다. 차라리 제주도에 가자, 일본은 어때? 다른 방면으로도 얘기해 봤으나 남편은 완고했고, 올해는 괌에 가고 내년에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특히 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야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며칠을 리조트에서 수영만 하러 가는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영이 목적이라면 국내에서 하면 되지 않겠냐는 얘기도 했다. 여행을 두고도 우리 부부는 의견이 확연히 갈린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아이들도 어른한테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내가 어딘가 여행을 얘기하면, 남편은 "애들은 뭐 해"라고 대답한다.
어쨌든 우리는 괌에 가기로 했다. 바쁘다는 핑계와 함께 남편이 더 원한 여행이었기에 나는 여행경비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남편에게 보내고, 여행준비에는 손을 거의 놓고 있었다. 고작 내 래시가드와 아이들 바를 선크림정도를 샀다. 사실 선크림은 나도 같이 사용할 목적이었다. 여행상품 예약부터 준비물을 챙기는 것까지 거의 다가 남편의 몫이 되었다.
남편은 여행일정이 1주일 이내로 들어오자 스트레스 속에서 허우적댔다. 토요일 출발을 앞두고 여행 3일 전, 첫째가 학원차에서 절뚝거리며 내렸다. 운동이 끝나고 신발을 접어 신고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목을 접질렸단다. 언어센터를 취소하고 늦게까지 여는 인근 정형외과를 찾아 남편과 첫째를 보냈다. 한참 뒤 남편에게 온 사진 한 장. 아이가 반깁스를 했다. 이어 온 전화에서 남편은 땅을 뚫을 기세로 한숨을 쉬며 의사가 수영은 안된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첫째는 물개 뺨치게 물을 좋아했다. 물속에서 너무 자유롭다고 했다. 남편이 내 반대를 뚫고 강하게 괌 여행을 추진한 것도 첫째가 8할은 될 것이다. 이런 게 날벼락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심각하게 말했다. "20대까지만 해도 행복했는데.. 굿이라도 해야 할까?"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그보다는 전생이 있다면 첫째가 남편의 원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첫째를 이고 지고 살아가는 남편은 정말이지 힘들어 보인다.
그러다 문득 '나 또한 우리 엄마의 전생 원수가 아니었을까?' 뜨끔했다. 첫째는 고작해야 아직 9살인데, 나는 무려 37살이다. 우리 엄마는 무슨 죄로 이혼해 돌아온 딸내미와 돌도 안되었던 손자를 거뒀고, 그게 이어져 재혼한 후에도 주말마다 손자를 자주 돌봐주고 있다. 올 초에는 친정집 근처로 이사까지 와서 종종 반찬까지 가져가고 있으니 남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첫째는 여행 2일 전 저녁, 열까지 올랐다. 열감기로 보통 3일이면 열이 떨어진다고 하고, 고열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천진난만하게 까부는 첫째를 옆에 두고 남편의 고민과 한숨은 깊어졌다. 열감기의 가장 큰 걱정은 둘째였다. 첫째와 달리 둘째는 열이 났다 하면 고열로 치솟았고, 그에 따를 내 원망까지 걱정했다. 다음날 여행 취소를 급히 알아봤지만, 취소 수수료가 상당했다. 입원을 했다면 아이와 어른 1명은 무료취소가 가능했지만 깁스정도로는 아이분만 무료 취소가 가능하다고 했다. 남편의 고민은 여행 캐리어를 싸던 출발 30분 전까지도 이어졌으나, 우리는 그냥 가기로 했다. 감기가 옮지 않기를 바라며 일단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