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구석여행에서 느낀 삶의 통제감

번아웃시대의 생존전략이라고?

by 도비앤

여행이라 하기도 조금 그런가? 숙소에서만 있었을 뿐 어디 돌아다닌 곳이 없다. 대학생 때 친구와 함께 서울에 에어비앤비에서 하루 숙박을 했다. 사실상 일 때문 이기는 했지만 결혼 후 첫 외박이었다. 사진도 많이 찍고 근처 케이크 맛집에서 사진을 위해 손을 떨며 비싼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구매했다. 숙소는 처음에는 조금 쌀쌀한 듯했지만 금세 따뜻해졌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니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건 친구와 보낸 저녁이 아니라 고요했던 아침시간이었다. 피곤했지만 조용히 일어나 비어있는 식탁방으로 향했다. 보글보글 뜨거운 물을 끓이고, 챙겨간 오설록 티백을 하나 우렸다.


아침에 맡는 티의 향긋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혹시 해서 챙겨간 '트렌드코리아 2026' 책을 펼쳤다. 서울 한복판에 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식탁, 집에서도 아침마다 마시는 차인데 신기하게도 너무 좋았다. 가평에서 리버뷰 통창을 보며 맞이한 아침이라거나 제주도에서 산방산 뷰를 보며 혼자 앉아있던 시간이 떠올랐다.


여행지 숙소를 고를 때 나는 뷰를 중요하게 보는 편이다. 내부 시설보다 뷰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건 몇 년 전에 갔던 가평여행 때문이었다. 아이들과 복닥거리며 정신없었던 여행, 자고 일어나 아침에 특별할 것도 없는 차가운 식탁에 앉았다. 블라인드를 걷는 순간 뻥 뚫린 통창으로 들어온 건 리버뷰였다. 가평의 강이 이렇게나 이뻤다고..? 그전에 봤던 실개천 같던 강과 다르게 가평의 강은 생각보다 크고 푸르렀다. 그 이후로 나는 바다뷰보다도 리버뷰를 찾곤 했다.


이번에 묵은 서울 숙소는 한강뷰는 아니었다. 뷰가 있다기에는 내가 마주하고 앉은 건 벽에 가까웠다. 방한 커튼에 블라인드까지 쳐져있는 창문이었다. 나보다 늦잠을 잔 친구덕에 혼자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나 또한 늦잠을 잤기에 길지 않았던 아침시간이었다. 리버뷰에 집착하느라 남편도 여행지를 고를 때 뷰를 체크하곤 했는데, 여행 가서 느낀 기분 좋음이 통창문으로 본 리버뷰나 제주도에서 본 산방산 뷰때문이 아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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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코리아 2026에서 읽은 대목이다. "단순한 휴식대신 꾸미기 활동, 원데이클래스, 스포츠관람처럼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활동으로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이러한 체험은 단순한 여가활동을 넘어, 소진된 자신을 회복하고 삶의 통제감을 되찾기 위한 번아웃 시대의 생존전략이라 할 수 있다." - 81쪽


어쩌면 내가 여행마다 느낀 그 기분 좋음은 '삶의 통제감', '효용감'같은 것에 가까웠을까. 뷰를 마주하고 내가 한 일은 주로 독서나 기록이었다. 아이들 틈바구니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짧게라도 느끼는 여유로움. 찐 독서가는 아닌 나는 책을 읽으며 때때로 느끼는 자기 효용감같은 게 좋다. 기록을 하면서도 나는 내 삶이 잘 흘러가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즐긴다.


집도 숙소만큼 깨끗하게 정리해 두면, 내 집 거실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여행의 새로운 환경이 필요할까? 아침이라면 아무래도 등원, 등교 준비에서 상당히나 멀어져야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집에서도 가능할지 확인할 방법은 역시... 더 일찍 일어나는 것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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