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향은 회피일까..? - 1
회사를 나와 세상에 부딪혀보니, 내가 회피성향이 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여름 폭우가 내리던 날, 가족과 함께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린이 손님은 아이스크림 가게에 키오스크가 꺼졌다고 말했다. 핸드폰으로 cctv를 확인하려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또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도 어린이 손님이었다. 복도도 어둡고,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일단 상가관리단으로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한전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접수되어 출동중이라고 했다.
잠시후 상가 번영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동네 길 한쪽 전체가 정전이 되어 한전에서 오고 있고, 복구 시간은 와봐야 안다고 말했다. '냉동고가 꺼지면...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버틸까? 안에 물대만 해도 800만원은 들어있을텐데, 이대로 녹으면 다시 채우는데만 800이 드는 건가?'
생각이 돈에 가닿자 아이스크림 납품 업체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기 길 전체가 정전됐어요. 아이스크림을 냉동차에라도 옮길 수 없을까요?" 영사님(영업사원)은 지금 오픈하는 곳이 있어서 끝내고 가면 몇시간은 지날 거라고 했다. 냉동고 안에 냉기가 있으니 아이스크림이 바로 녹지는 않는다고, 몇시간은 괜찮을거라고도 했다. 영사님의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겨울이면 조금 덜 걱정스러웠겠지만, 한여름이었고 매장 내 에어컨도 같이 꺼졌으니 눈 앞에서 800만원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며 그냥 밥을 이어서 먹었다. 지켜보던 남편이 말을 꺼냈다. "가봐야하지 않아?" 남편의 말을 듣고나서야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아빠랑 언어센터에 보내고, 둘째를 친정에 맡기고 곧장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오는 길에 영사님과 한 번 더 통화했는데, 냉동고를 최대한 열지 말고, 가능하면 박스로 덮어두라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상가에 남은 박스를 찾아 아이스크림 냉동고 위를 덮고,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정전으로 냉동고를 열수가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한전에서는 복구까지 3~4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일단은 어두컴컴한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아서 냉동고의 냉기를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인근 드라이아이스 판매점을 검색했다. 6시가 넘은 시간이라 문을 닫은 곳도 있었고, 온라인으로 사전 주문만 받는 곳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 들어가있던 무인 아이스크림 사장님들 단톡에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 일인 것처럼 내 아이스크림을 걱정해주고, 지역을 물어 근처 드라이아이스 공수처까지 찾아주신 분도 계셨다. 다행히 8시까지 판매하는 곳이었다.
문제는 아이스크림 가게와는 반대 방향으로 집에서 10분거리였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마침 남편이 첫째 센터가 끝나서 사온다고 했다. 드라이아이스를 받아 넣고 어두운 가게를 지킨지 1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가게에 불이 들어왔다.
나 잘난 맛에 살아왔던 것과 상반되게 나는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걸까? 돌이켜보면 800만원을 두고서도 나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장 생각나는대로 한전과 영사님에게 전화를 해본 것을 끝으로 나는 계속 먹던 밥을 먹고 있었다. 남편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나는 매장에 갔을까?
이상하게 그 순간 그 큰 돈이 와닿지가 않았다. 다행히 이 날은 드라이아이스 비용으로 끝이 났지만, 최근 서울에 새로 오픈한 사업장에서 나는 내 회피성향의 댓가를 톡톡이 치르고 있다. 일이 크게 터지고 나서야 자신을 돌아보게된다. 나는 왜 그랬을까...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