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벼랑 끝에서 한 번만

첫 번째 처방, 둘 다 내 아이다

by 도비앤

정말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나는 주기적으로 이혼이 하고 싶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혼을 갈망하는 건 아니지만, 같이 살아낸다는 게 참 버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런 날들이 계속해서 위기의 날로 기억될지, 정말 어느 날에는 끝을 내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첫 번째 이혼은 운이 없었다거나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등의 이유로 둘러댈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아니다. 두 번째라면 그건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를 키우며 살다 보니, 친아빠의 빈자리가 아쉬운 날들이 생겼다. '그렇게까지 이혼을 감행해야 했던 걸까?' 생각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는 조금 더 견디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점점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남들도 그렇게 사는 거 아닐까? 어느 부부나 싸움 없이 살진 않잖아. 딱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면서 또 남편과 손을 잡고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렇게 끝내고 싶던 하루는 그냥 흘러지나 가고 또 나는 이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과 살고 있었다.


그러다 절대 같이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모든 현실적인 걱정과 우리가 쌓아온 추억을 덮어놓고, 그냥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집에서 같이 못살겠다는 힘듦과 감정만 남는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남편에게 그만 살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남편은 이번에는 자기도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겠다고 했다. 대신 부부상담을 같이 받아보자고 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이 바뀌기 쉽지 않고, 내 기준에서 남편은 정말 벽같이 견고한 사람이니까.


우리의 부부상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내가 개인 상담을 가봤던 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남편에게 권해 같이 부부상담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다. 그 후 남편도 개인 상담을 두어 번 더 갔었다. 나는 직설적이고 명료한 상담사가 마음에 쏙 들었지만, 남편에게는 아니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남편에게 상담사의 직설적인 말들은 상처가 되었고, 우리는 비싼 상담대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었다.


상담을 몇 군데 받아보니 상담사를 선택하는 데에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나는 그저 하소연이나 하자고 비싼 돈을 내고 상담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말하는 시시콜콜한 사연들에 공감해 주는 상담사보다는, 해결을 도와주는 상담사를 만나고 싶었다.


벼랑 끝에 서있던 날로부터 몇 주가 지났고 드디어 부부상담을 다녀왔다. 이번에 만난 상담사는 조금 더 유하게 표현했지만 우리 부부사이의 케케묵은 원한과 갈등은 꿰뚫어 보았다. 눈물을 쏟아 내진 않았지만, 상담을 하고 나오니 어딘가 속이 시원했다. 상담사의 말은 어찌 보면 뻔했고 우리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강한 울림을 주는 한 마디가 남았다.


"둘 다 내 아이다."라고 자꾸 되뇌세요.

눈내린아침아이들이랑.jpg


상담사가 우리 부부에게 건넨 1차 처방이었다. 우리는 각자 아이를 한 명씩 데리고 만나 사는 재혼 부부다. 처음 몇 년간은 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어디든 넷이 같이 다니고, 무엇이든 넷이 같이 하려고 했다. 극과 극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은 서로 달랐고 갈등이 생겨났다. 한 반년 정도 됐을까, 우리 가족은 따로 주말을 보내기 시작했다. 각자의 아이에게 집중하고, 마음껏 사랑해 주는 시간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나는 내 아이와, 남편은 남편의 아이와. 아이들은 모두 엄마, 아빠라고 불렀지만 어른들의 마음속에는 내 자식, 니자식이 이미 갈라져있었다. 그러니 내 자식 옆에 있는 니자식이 이뻐 보일리 없었다.


상담을 받다 "둘 다 내 아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적어도 나는 뜨끔했다. 우리에게 빠진 중요한 조각을 발견한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이 밝자 나는 계속 되뇌었다. "저 자식도 내 아이다...", "쟤도 내 아이다...", "얘도 내 아이다", "둘 다 내 아이다" 고작 이 한 마디를 계속 되뇌었을 뿐인데, 신기하게 아이가 밉지 않았다.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더 이상 밉지는 않았다. 심지어 남편과 싸운 후에도 아이만은 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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