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있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약간의 소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용한 환경을 원하시는 분은 열람실이 있는 시립도서관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정확한 문구는 아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다. 처음에는 도서관에 이런 문구가 있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작은 도서관은 건물의 1층에 있었고, 2층과 3층은 시에서 운영하는 문화교실을 위한 공간이었다. 어느 날은 장구소리가 난타공연을 하듯 울려 퍼졌고, 노래교실이 열리는 날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트로트가 도서관내부를 진동하며 강타했다. 심지어 도서관 내부에도 작은 공간이 있어 시니어를 위한 클래스가 종종 열렸는데, 그들은 여기가 도서관이라는 것은 안중에 두지 않고 안팎으로 요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내가 굉장히 많은 시립도서관들을 두고, 이 작은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한 데는 저 소음의 역할이 있었다. 본디 나는 너무 고요한 환경보다는 카페를 선호했는데, 카페라는 것도 그렇다. 손님이 누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동네 아줌마들이 들이닥치면 시끄러울 때도 있고, 그저 카페 음악소리에 기댈 수 있는 날도 있다. 어느 카페는 그 틀어놓은 음악이 시끄러워서 이어폰을 끼기도 하니까.
어쨌든 내가 이 도서관을 선택한 이유는 타도서관과 달리 어느 정도 소음에 허용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서관 내에서 핸드폰 벨소리를 울리거나, 이야기하고 떠들어도 되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니 사실상 어쩌다 울리는 장구와 트로트소리가 심한 날을 제외하고는 카페를 대체할만한 공간으로 충분했다.
그날도 나는 오전 일찍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작은 도서관에 와서 앉았다. 내 뒤편에는 나이 든 여자분이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도서관 안은 그래도 고요했기 때문에 통화내용이 너무 잘 들렸다. 굳이 원치 않았지만 통화 상대의 음성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어디냐는 질문에 그녀는 여기가 병원이라고 했다. 오래 걸리냐는 되물음에 1시간쯤 걸린다며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어디 병원에 갔냐는 물음에도 막힘없이 거기 OO사거리에 정형외과라고 답했다. 또 갔냐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매일 다녀야 한다고도 했다.
무슨 사연일까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가 시작되었다. 이 시간에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는 그녀는 어디 직장인일까? 잠시 병원을 핑계로 하고 와서 책을 읽는 걸까? 그도 아니면 만나기 싫은 상대라서 둘러댄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한 데는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보다 혼자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카페를 수없이 다녔지만, 대부분 혼자가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뜨개를 하거나 하다못해 핸드폰을 할지언정 혼자가는 카페가 좋다.
나혼자만의 시간으로 채워지는 내 고요한 일상에도 종종 균열이 생긴다. 갑작스레 안부를 묻는 연락들, 수다를 위한 통화, 그저 한 번 만나자는 얘기. 그럴때면 보통 나는 바쁘다고 다음을 기약한다. 물론 구체적인 날짜를 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다음은 거절이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왜 그 관계에서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을까? 뭐가 부담스러웠을까? 사실 그런 관계의 인물과는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깊게 연락하는 이가 없다. 이걸 상대를 배려한 어른들의 멀어지기라고 해도 될까? 나는 왜 혼자있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을까?
어릴때는 무작정 관계에 진심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을 솔직함이라고 생각했고, 모난 돌로 살아왔던 10대와 20대를 지나 30대 후반에 접어든 후에야 나는 솔직함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솔직함은 때로는 나의 편의를 위한 무기가 될 뿐,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굳이 솔직해서 상대의 적의를 살 필요가 없다는 것. 구태여 이유를 찾아냈지만, 아무래도 이런 이유를 아이에게 들려주며 이렇게 자라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거짓말로 서로 편안하다면 정말 그걸로 괜찮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