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은 얼굴이잖아. 오빠는 말이랑 글이고

고민상담해줘서 고마워.

by 권민창

아는 동생이 우울하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대학교때 친했던 동기가 있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자신을 흉보고 다닌다고 해요. 그리고 받을 게 있는데, 자기를 만나고 싶지도 않은 거 같다고 합니다. 연락해보니 굉장히 차가운 목소리로 '택배 보내줄테니 주소 얘기해.'라고 말했다네요.
여리고 착한 심성을 가진 투명한 호수같은 동생이라, 누군가 던진 작은 돌의 잔잔한 파동조차 견디기 힘든가 봅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어? 걔 왜 그런데? 택배 보내준다고 할 때 왜 아무 말 안했어? 욕이라도 한바탕 해주지.'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본인이 머릿속으로 충분히 했던 생각들일겁니다.
그 친구의 하소연이 끝나고,
'많이 힘들지?'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목소리에 울음이 섞입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초등학교 슬기로운 생활 수업때 남자는 여자를 울리면 안된다고 배웠는데..
다들 해결책을 제시해주려 해서 오빠도 그럴 거 같았는데 그냥 자기 마음에 공감해줘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법륜 스님이 해주신 얘긴데, 우리가 꽃을 볼 때 이쁘다, 아름답다라고만 생각하지 꽃이 우리를 좋아해주길 바라지 않잖아. 그런데 인간관계에서는 이상하게 사람들한테 기대를 많이 하게 된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도 날 좋아하길 바라고, 그게 심해지면 집착이 되잖아. 그런데 사실 인간관계도 꽃과 마찬가지인거 같아. 내가 무언가를 해줬다고 그 사람도 내게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보다는, 그 사람한테 무언가를 해줬다는 내 행복에 집중하는 게 좋은 거 같아. 그럼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더라고. 힘들텐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말이 끝나자, 조용히 듣고 있던 동생이 작은 목소리로 '고민상담 들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기분이 너무 편안해졌어.'라고 합니다.
저도 '고민상담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쉼터같은 존재로 남을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하고 감사한 거 같습니다.
통화가 끝나기 전 동생이,'오빠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기분 좋게 해주는 매력을 가졌어. 그 능력을 꼭 다른 사람들한테도 전해줬으면 좋겠어.'라고 합니다.
제가 웃으며, '난 박보검처럼 바라만봐도 기분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거라도 잘해야돼.'라고 말하자,
그 동생이 '각자의 매력이 다른 거지 뭐. 박보검은 얼굴이잖아. 오빠는 말이랑 글이고.'라고 하네요.
끝까지 오빠도 괜찮아라는 말은 안합니다.
역시 어려서 그런지 거짓말을 못하네요.
이쯤되면 해줄만도 한데 말이죠..

이 동생은 식당에서 종업원이 반찬을 가져다주시면 들릴듯 말듯 작게라도 꼭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마음이 이쁘고 선한 친구입니다.
동생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 곁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나로 사는 게 자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