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선배가 부처님인 줄 알았어요
'선배, 잘 지내시죠?'
1년 전에 퇴사한 후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늘 긍정적이고 씩씩한 에너지를 뿜던 후배라 알게 모르게 저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었나봐요.
그 후배의 존재감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 난 항상 잘 지내고 있지. 넌 어떻게 지내냐?'
4년만에 처음 한 승진턱으로 회식비를 쐈는데 고기값만 110만원이 나와서 그 달 라면만 먹고 살았던 얘기, 술을 진탕 마시고 후배 집에 파전을 제대로 부쳤던 얘기들을 하며 눈물나게 웃었습니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더라고요.
'아 선배 근데 그거 기억나세요? 선배 눈썹 위에 흉터 사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다시 기억이 났습니다.
2년 전 쯤이었던 거 같아요. 당시 사무실 문이 철문이었고, 제어장치가 없어 천천히 열리지 않고 툭 치면 슝 하고 열렸어요. 그 때 저는 다른 사무실에 다녀왔다 들어가는 상황이었고, 후배는 화장실에 간다고 사무실을 나가는 상황이었죠.
제가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후배가 안에서 문을 열었고 그 순간 문의 모서리부분이 제 눈썹 위를 찍었습니다.
아프지는 않았는데 후배가 제 얼굴을 보고 경악하더라고요. 뭐 얼마나 심하길래 저러나 싶어서 거울을 봤는데 세상에나.
눈썹 위 2cm정도가 I자로 푹 들어갔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 상황에서 농담을 했던 거 같아요.
'야 이거 완전 사과처럼 푹 파였네. 애플 로고 같다 ㅋㅋ'
아프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뭔가 신기했어요.
후배가 계속 옆에서 죄송하다고 눈물을 흘렸고, 전 다시 농담을 했습니다.
'야, 다음에 나 실종되면 이걸로 찾아라 알겠지? 인상착의 : 무섭게 생김, 얼굴 위 2cm 흉터 있음 ㅋㅋ.'
성형외과에서 상처를 잘 꿰매주셔서 다행히 흉터는 티 안 날 정도로 사라졌습니다만, 후배에게는 미안했던 감정이 마음의 흉터로 남아있었나봐요.
'선배가 그 때 그렇게 얘기할 때 부처님인 줄 알았잖아요 ㅋㅋㅋ 제가 그때 이후로 선배 말이라면 껌뻑 죽었는데..'
'야 그게 껌뻑 죽는 놈의 태도였냐? 말도 안 돼. ㅋㅋ'
'여튼.. 선배 그 때 진짜 감사했어요. 저도 선배처럼 누군가를 그렇게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럼 너도 일단 얼굴에 훈장 하나 만들어.ㅋㅋ'
'안 돼요. 가뜩이나 무섭게 생겼는데 그럼 사람들이 다 피할 거예요. ㅋㅋ'
그렇게 10분 정도, 이런 저런 대화를 굉장히 즐겁게 했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후배가 저한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선배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이에요. 남자끼리 오글거리긴 한데.. 선배 진짜 따뜻한 사람이에요.'
돌아보면 저도 참 마음이 걍팍하고 부정적일 때가 있었습니다만 많은 경험을 통해, 이미 일어난 안 좋은 일에 대해서 계속 후회하고 탓하기보단 그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내 마음이 훨씬 더 편해진다는 걸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전화를 끊고 최근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봤습니다.
네 명이서 택시를 탔는데, 뒤에 덩치 3명 앉으니 자리가 좁더라고요. 덩치1이 말했습니다.
'야, 민창아. 덩치들씨리 타니까 자리가 좀 불편하다.'
저는 그 때 웃으며 '야, 추운데 딱 붙어가니까 따뜻하고 너무 좋지 않냐?'하고 얘기했거든요. 그러니 애들이 진심으로 놀라더라고요. 그것도 능력이라고.
그 때 새삼 느꼈던 거 같습니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나도 긍정과 따뜻함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구나, 누군가의 마음에 못을 박는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꽃을 심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었구나라는걸요.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마음의 가뭄이 온 분들에게 제 글이 마음을 촉촉이 적실 수 있는 따뜻한 단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