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연애를 한다고 했을 때 '뭐 하는 사람이야?'라는 질문이 실례일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예쁘게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하고 마는 편입니다.
2년 전 C에게도 그랬던 거 같은데요,
C가 최근에 2년을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건강한 연인 사이라면 대개 주변지인들에게 연인과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공유하고 싶어합니다. '지영아, 어제 민혁이랑 싸웠는데 이거 누가 잘못한 거야? 들어봐.'
'민석아, 그 때 보여준 내 여자친구 기억나지? 일주일 뒤면 100일인데 어떤 선물해주면 좋을까?' 그런데 C는 이상하리만큼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제가 먼저 묻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 외에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할 수 있을만큼 똑똑한 사람이라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죠. 그렇기에 유독 C의 이별은 급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헤어졌냐, 그 사람이 누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진 않았지만 궁금해하는 제 눈빛을 눈치 챘는지 C가 먼저 말을 꺼내더라고요. '너도 알다시피 난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잖아. 그런데 그 사람은 나와는 정반대였어.
데이트를 할 때도 계획대로 움직였고, 정해진 시간 외에는 날 만나지 않았어.
물론 나도 바빠서 그런지 거기에 대한 불만은 딱히 없었긴 했지만.. 진짜 진짜 싫었던 게 하나 있어.' '뭔데?' '넌 사랑한다라는 말을 어떤 식으로 해?' '온 맘 다해 하겠지.'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바부야.' '다정한 눈빛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며 하거나,
꽉 안아주면서 귀에 속삭이겠지.
어제 종일 부족한 글솜씨로 널 생각하면서 손편지를 썼다고 쑥스럽게 말하며 얘기하거나,
칼바람이 부는 날 데이트를 할 때면 따뜻하게 데워진 핫팩을 손에 쥐어주면서 말하겠지.‘ ‘응. 나도 너랑 같아. 소박하지만 따뜻한 그런 감정의 공유를 원해. 그런데 그 사람은 아니었어. 시간 되면 나오는 급식처럼, 사랑한다라는 말을 아무 감정 없이 했어. 그게 초반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름이 끼치더라.’ ‘듣는 나도 그렇네. 어떻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그런 식으로 할 수가 있어?’ ‘그러니까... 근데 최근에 그 사람한테 계속 연락이 와. 미안하다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누나는 어떤데?’ ‘모르겠어. 너도 내 성격 알잖아. 쉽게 못 끊는 거. 더구나 2년이란 시간을 연인으로 지내왔으니 더더욱 그래.’
5초 정도 생각하던 저는 C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누나, 그 사람 다시 만나면 행복할 거 같아?’
그러자 C는 고개를 젓습니다.
‘아니, 안정적인 느낌은 있지만 행복하진 않을 거 같아. 난 사랑 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응, 누나. 그 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냥 다를 뿐이지. 그런데 난 누나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똑같은 이유로 실망하고 헤어질 거 같아. 우리 같은 감성적인 사람들은 그래.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나가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안 되잖아. 비싸고 화려한 외제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시동이 안 걸리듯.’
C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마 저보다도 충분히 많이 생각했겠죠. 답정너였던 거 같은데,
뭐 이 정도면 완벽한 답정너의 표본 아니었나 싶습니다.
C의 전 남자친구를 탓하는 건 아닙니다. 설렘보다는 안정성을 좋아하고, 정성보다는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연애상대일수도 있겠죠.
하지만 C는, C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지만 시너지가 나는 사람입니다.
아프다고 하면 ‘괜찮아? 푹 쉬어’라고 얘기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직접 죽을 사서 얼굴을 보러 오는 사람, 스쳐지나가면서 했던 소소한 말들을 소중하게 기억해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C도 온전히 C다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누나, 선택은 누나가 하는 거고, 나는 아무쪼록 누나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C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고마워, 너도 얼른 따뜻한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조심히 가.’ 누군가가 제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그만큼 내가 그 사람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었다고 느껴질 때 참 행복해요.
저는 C같은 사람들과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따뜻한 대화를 나눌 때가 참 편안하고 좋아요.
문득, C도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