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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Jan 22. 2019

사랑하면 헤어진다라는 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름다운 이별은 없어요.

'사랑해서 헤어진다'라는 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에 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데 그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사랑을 지키고 이어나가야지 어떻게 헤어질 수가 있냐고 그런 궤변이 어디있냐고,
상처받기 싫으니까 먼저 도망치는 거라고, 그럴싸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A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정말 평범한 사람입니다. 6년차 직장인. 일주일에 한 번씩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갖고 한 달에 100만원씩 적금을 넣습니다. 장래희망은 좋은 아빠.
B라는 전 여자친구를 자전거 동아리에서 우연히 만나 3년 정도 사귀었습니다.
B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잘 사는 집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고, 사업적인 재능도 있어 젊은 나이에 금전적인 성공을 이뤘습니다.
둘은 정말 사랑했습니다.
함께 한강에서 자전거를 탔고, 손 잡고 집 근처 산책로를 거닐며 맥주를 마셨습니다.
늦은 저녁, 공원 벤치에 앉아 달을 보며 서로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 둘은 사랑한다면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귄지 3년이 되던 해, A는 B의 부모님과 식사를 하게 됩니다.
식사자리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B의 부모님은 A에게 B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묻고, 인상이 좋아보인다 되게 착실하게 살아왔다라는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돌아오는 길, 자리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자 A는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립니다.
'야, 나 B 부모님이랑 식사하고 오는 길이야. 좋게 봐주신거 같아. 결혼하냐고? 몰라 임마 ㅋㅋ.'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요, B의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A씨, B에게는 얘기하지 말고 따로 커피 한 잔 해요.'
A를 만난 어머님은 왜 B가 A를 만날 수 없는지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습니다.
'B가 걱정이 돼서 아직 결혼은 시기상조인거 같다. 지금 사업도 더 배워야 하고, 내년에는 유학을 보낼 거다. 딸에게는 오늘 만났다는 거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해해달라.'
좋게 좋게 돌려 말했지만 의미는 이거였죠.
'내 딸과 헤어졌으면 좋겠다.'
계단을 두 칸씩 오르고 싶었어요. 다리를 쭉 찢고 몇 번 연습하니 쉽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세 칸도 성공했습니다. 네 칸까지도 가능할 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섯 칸부터는 제 다리길이로는 무리였습니다. 2층에 가려면 30칸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야하는데 그건 절대 한 번에 올라갈 수 없었어요. 날개가 없는 이상.
A도 그랬을 거예요. 네 칸의 위치라 믿었는데, 조금만 노력하면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30칸을 한 번에 올라가야했던거죠. A에게는 날개도 없었구요.
그 순간 A가 느꼈을 절망과 상실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서로가 더 힘들고 아프기 전에 그는 B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이별을 말하는 사람이 이별을 통보받는 사람보다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 왜?라고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세게 때리며 우는 B에게 사실을 얘기할 수 없고,
'그냥.. 잘 안 맞는 거 같아.'라며 감정을 숨길 수 밖에 없는 현실.
참 씁쓸하죠. A가 했던 사랑을 본 후엔, 사랑하면 헤어진다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뷰티인사이드라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인데요, 우진이라는 주인공이 자신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지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이수를 위해 정말 아무렇지 않은 채 담담하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입니다.
우진은 과연 이수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이별을 고한걸까요?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상대방이 더 아프고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겠죠. 그토록 사랑하고 위했기에 헤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처음으로 라이브방송을 해봤는데요.
'국적이 다른 장거리연애의 헤어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되는지'에 대해 질문해주셨습니다. 대부분 사랑하면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극복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답변해주셨던 거 같은데요, 저는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거 같아 답변을 좀 보류했던 거 같습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안고 싶을 때 안을 수 없다는 건 연인 사이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힘듦과 고통을 사랑의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한 채 연애를 지속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행동이지 않을까요?
모든 이별은 힘들고 아픕니다만
언젠간 30칸을 한 번에 넘을 수 있겠지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안고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사랑보다는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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