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에 보자 임마.
최근에 일이 있어 서울아산병원을 자주 왔다갔다 했습니다.
하나의 도시더군요. 사람들도 굉장히 많고요.
그런데 아산병원 1층에서 굉장히 익숙한 얼굴을 봤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적 있으시죠? 아니면 쪽팔리지만, 본능적으로 ‘어? 누구야!’ 하며 상대방을 부르는 경우.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 재학시절, 야자를 땡땡이치고 담임쌤한테 자주 몽둥이찜질을 당했던, 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착했던, 그러다 갑자기 중국유학을 간다고 학교를 자퇴했던 인혁이라는 친구였습니다. ‘주인혁!’ 이라고 부르자 슥 돌아봅니다. 소 같이 큰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그 눈이 더 커집니다.
‘어! 니가 여기 웬일이고!’
‘내야 뭐 일 있어서 왔지. 니는 뭔 일이고.’
‘아, 내 애기 소아과 볼 일 있어가꼬. 그나저나 존나 신기하네. 이런데서 다 만나고.’
‘그러니까. 결혼생활 어떻노?’
‘뭐, 좋다. 애 보는 맛에 살지.’
‘그래, 제수씨 기다리니까 얼른 가봐라.’
‘그래, 담에 보자.’
2분 정도, 그 자리에서 굉장히 반갑게 인사를 했고, 아쉽게 작별을 했습니다.
병원에 나온 뒤, 인혁이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통화로 못다한 이야기를 하니까 예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반갑게 머릿속에 떠올라 준희라는 친구와도 30분 동안 통화를 하며 많이 웃었습니다.
‘김규현 종아리 존나 굵었었다이가. 근데 금마 종아리 얇아진다고 맨날 종아리 세게 주무르다가 종아리 멍든 거 기억나제? ㅋㅋㅋ아 존나 웃기다 진짜.’
‘권민창 니 맨날 땀 존나 흘리면서 쉬는시간마다 농구하러 나갔다이가. 학교에 농구하러 온 색희 같았다.’
‘니랑 주인혁이랑 야자 째서 정동훈쌤한테 엄청 맞았던 것도 기억하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30분이 훌쩍 지나갔더라고요.
꿈 많던 17세 소년들은 이제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 되어있었습니다.
‘야, 여튼 권민창. 니 소식 SNS로 잘 보고 있다. 진짜 부럽고 대단하다. 응원한다.’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던 옛날 기억 서랍을 오랜만에 5칸까지 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서랍에는 모르고 지내다 우연히 안 입던 코트에서 발견한 만원짜리 지폐처럼, 저도 잊고 있던, 그러나 꼭 필요했던 것들이 들어있더라고요.
순수함, 호기심, 가능성, 패기.
이제 다시 그것들을 꺼냈으니, 30살의 서랍으로 고이 모셔놓으려고 합니다.
그 때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 인혁이와 준희, 그리고 규현이에게 고맙습니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거나, 뜬금 없이 목소리를 듣는 행복이 앞으로도 종종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