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도준이라는 후배가 있습니다.
이 후배는 이유 있는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는 편입니다.
나에 대한 애정과, 내가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저렇게 정성스럽게 피드백을 주는 거겠지라는 생각을 스스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못났지만, 후배를 아끼다보니 한 번씩 신랄한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몇 달 전이었을까요, 집 근처 카페에서 도준이를 만났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뭔가 도준이의 결점들이 보였고, 저는 도준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별 생각 없이 말을 했던 거 같아요.
‘도준아, 니가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하면 사람들이 기분 나빠해.’
그러자 도준이가 저를 쳐다보며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 이게 그렇게 잘못된 행동이었군요.. 네 알겠습니다.’
순간 도준이에게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제가 굳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될만큼 사소한 행동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도준이에게 ‘인생의 조언자’로서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그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도준이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도준아, 아까 내가 너한테 너무 직설적으로 말한 거 같아. 사실 그렇게까지 심한 문제는 아니었는데, 내가 너한테 돌직구를 날리는 포지션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아. 제일 중요한 건 니 감정인데. 다시 한 번 미안하다. 다음부턴 조심할게.’
그러자 도준이에게 카톡이 오더라고요.
‘네, 선배 솔직히 그 말 들었을 땐, 좀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말이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건가라는 생각도 들어서 자연스레 위축되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선배님.’
세계적인 동기부여가 앤서니 라빈스는 ‘변형어휘’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그 말인즉슨,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말을 사용하게 되면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와 기분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화가 나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는
‘x치네, x같네.’ 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아, 좀 아쉽다.’라고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실제로 기분과 태도가 x치고, x같이 변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냥 아쉬운 정도에서 끝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 사소한 행동들이 우리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이겠죠.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그 위에 좋은 말을 다시 뱉음으로써 이미 뱉은 말을 덮을 순 있습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전 도준이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도준아, 지금 넌 정말 잘 하고 있어. 100점이야. 근데, 120점이 되는 방법도 있는 거 같아. 이걸 약간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상대방이 훨씬 더 기분 좋아하지 않을까?’
상대방에게 실수를 했다 싶을 때, 알량한 자존심과 특권의식을 내려놓은 채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레 상대방과의 관계도 전보다 훨씬 원만해질 거 같아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가시가 되기보다는,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메디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