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 신논현역 급행열차를 놓치고 생긴 일

잠시의 소강상태

by 권민창

오늘 9호선 신논현역 근처에서 친한 형과 식사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7시가 좀 넘어 식사가 끝났고, 신논현역으로 내려가자마자 뭔가 분주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왠지 느낌상 급행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신호로 보였습니다.

자연스레 저도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왠지 피곤하고, 얼른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었어요.

꼭 급행을 타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단을 빨리 내려가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열차가 방금 도착했는지 올라오는 엄청난 사람들의 물결이 보였습니다.

좁은 틈을 비집고 내려가서 열차 앞에 도착하는 순간, 열차의 문이 닫혔어요.

그리고 닫힌 문 사이로, 숨 쉴 공간조차 부족해보일정도로 따닥따닥 붙어있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짧게는 5분, 길게는 15분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요.

급행열차는 떠났고, 신논현역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2분 뒤에 일반열차가 왔습니다. 일반열차는 다행히 앉을 자리가 충분했습니다.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박웅현 작가의 여덟단어라는 책을 꺼냈습니다.

6번 정도 완독한 책이라, 왼 손으로는 표지를 잡고, 오른 손으로는 책을 넘기며 걸리는 페이지를 폈습니다. 그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겁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특히 욕심을 부려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의 삶은 미친 개한테 쫓기듯 정신 없이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도망가느라, 뛰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죠.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쫓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우리의 삶, 나의 삶을 살면 되니까요.’


만약 제가 5분 더 일찍 가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붙어서 열차를 탔다면, 이 아름다운 문장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아쉽게도 일찍 가지는 못했지만, 고맙게도 그 덕에 앉아갈 행운을 얻었고, 앉을 수 있었기에 우연히 핀 책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사유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항상 바쁘게 살아왔던 거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누군가에게 ‘열심히 산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요.

하지만, 그 바쁨 안에 온전한 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그저 타인이 욕망하는 것들을 응당 내가 욕망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았습니다.

매번 주말이면 강의를 듣고 배우기 위해 홍길동처럼 지역을 왔다 갔다했고,

일요일 마지막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쉼 없이 달리다 탈이 났습니다.

아프게 되니 하던 일들을 강제로 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조바심이 났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는구나.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구나.’

주말 약속을 한 달간 잡지 않고, 처음으로 나에게 휴식을 줬습니다.

늦잠도 자보고, 아무 것도 안하고 누워서 뒹굴거려도 보고,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도 봤습니다.

그 순간, 구름이 움직이는 게 보였습니다.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는 구름.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구름이 마치 우리의 인생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척박한 아스팔트 위에 난 꽃에서 희망을 보고, 멀리서 들려오는 버스 지나가는 소리에서 선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며 제 삶도 조금씩 변해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너무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천천히 소화하고 삼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속도로 꾸준히, 천천히 구름처럼 움직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깊이 들여다본 순간들이 모여 인생의 찬란한 행복을 만들어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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