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고 자존심을 내려놓자.
최근에 굉장히 부끄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했습니다.
중학교 동창인 A라는 친구가 같은 동창인 B와 C에게 몇 년 만에 갑자기 연락 와서, 이제는 여유도 생기고 성공도 했으니 얼굴이나 한 번 보자라는 식으로 메시지가 왔다고 합니다.
저는 A와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별 생각도 없었지만 B와 C를 아끼는 마음에 오지랖을 좀 부렸어요. 너 혹시 악의 소굴로 끌어들이는 거 아니냐고, 그런 식으로 갑자기 연락 와서 성공했다고 말하면 먼저 의심을 해봐야 할 거 같다고, 항상 경계하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1달 정도 지났을까요, 아침에 C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미안하다. 민창아. 어제 A를 만났어. 그냥 분위기상 웃으면서 뭐 민창이가 웃으면서 니 사기치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그런 말도 했었다라고 얘기를 했었거든. 그 때 당시는 다 웃고 넘겼는데, 갑자기 A가 생각을 많이 한 거 같더라고. 집에 도착하더니 화가 많이 났는지 니 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 내가 안 가르쳐주니까 이리저리 다 물어보고 다니는 거 같더라. 근데 진짜 별 거 아닌 듯이 웃으며 지나갔거든. 그런데 이렇게 되니까 나도 미안하고 골치 아프네. 미안하다.’
C와 전화를 끊으며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자주 연락을 하던 것도 아니고, 갑자기 연락 와서 성공했다고 먼저 얘기하면 누구라도 의심부터 하지 않을까?’
그런데, 계속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안해졌습니다.
A는, 마음 속 깊숙이 동창생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을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에 가까워졌을 때, 여유롭게 동창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고, 그렇게 뜬금 없이 연락을 한 것 또한 반가움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이게 별 일도 아닌거지만, A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처받을 수 있겠다, 내가 너무 경솔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A에게 전화를 해서 약 10분 동안 별 다른 변명을 하지 않은 채, 니가 기분 나빴던 부분에 대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결코 널 시기하거나 니가 못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세치 혀로 가벼이 너의 세월을 넘겨짚어서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말입니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하태균 교수의 ‘대한민국에서 행복찾기’라는 강의를 보면, 한국인의 두드러진 3가지 특성 중 하나인 ‘주체성’에 대해 얘기합니다. 이 주체성은 어마어마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우리가 겪는 인간관계의 경우에서는 ‘철저히’ 자신의 기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의 입장에선 항상 별 일이 아닌 것 같은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상처 받았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상처를 줬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도 아마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분명 ‘뭐 그런 거 가지고 난리야. 그럴 수도 있지.’라며 결코 사과하지 않았을 거고, A와는 감정의 골이 계속해서 쌓였을 겁니다.
하지만 제 기준을 내려놓고 생각해봤을 때, A의 입장에서는 연락하지도 않은 친구가 내 흉을 보고 다닌다는 걸 누구의 입을 통해 들으면 충분히 화나고 속상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와 통화를 끝내고,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봤습니다.
가벼운 입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는 않았는지,
깃털 같은 행동으로 누군가의 감정을 짓누르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만약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서, 누군가와 갈등을 빚고 계시다면
철저히 상대방의 기준에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상대방과 쌓았던 견고한 성벽 같은 친분이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요.
반면에 그 순간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구한다면, 그 성벽은 더욱 더 두터워지고 견고해질 수 있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