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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Jul 15. 2018

달과 6펜스

도끼같은 책

인정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했다.
탐스런 책을 구매하는 행위의 기쁨이, 활자 자체를 즐기고 책장을 넘기며 사색하는 기쁨보다 커진 게 사실이다.
책을 추천해줄 때도 기존의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 위주로 추천해준다. 이유는.. 생략하겠다.
적당히 '괜찮다'라고 느꼈던 책들. 아니, 괜찮다라고 느끼기 위해 노력했던 책들.
아마도 난 서평을 위한 독서를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 추천의 당위성을 더욱 더 확고하게 다지려고 인생책들을 반복해서 읽고 있다.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다. 하지만, 지금 내가 소개하는 이 책은 꼭 읽어보길.

서머싯 몸 - 달과 6펜스
'찰스 스트릭랜드'는 마흔 살 남짓되는 런던의 잘 나가는 증권 중개업자다.
붉은 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깎은, 전체적으로 평범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스트릭랜드 가족은 중산층의 평범한 가정이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을 사귀고 싶은, 결코 해롭다 할 수 없는 갈망을 지닌 명랑하고 손님 접대를 잘하는 부인, 자비로운 섭리가 마련해 준 삶의 환경을 받아들여 제 의무를 다하는 다소 따분한 남자, 그리고 잘생기고 건강한 두 아이들.
그들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 만한 것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홀연히 파리로 떠난다. 여행이 아니다. 장기 출장도 아니다.
그냥 떠났다. 당신과 헤어지기로 마음먹었고, 결정은 번복하진 않겠다는 짧은 편지만 부인에게 남긴 채.
그가 남긴 유일한 단서는 동업자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호텔 주소였고, 부인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주인공을 보낸다


내연녀와 호화로운 곳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을 것만 같던 스트릭랜드가 있던 곳은, 높고 허름한 건물로 칠을 하지 않은 지 여러 해가 되어 보이는 굉장히 낡은 호텔이었다.
방탕스러운 사치의 흔적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고,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했지만 굉장히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반갑게 주인공을 맞아준다.

주인공은 스트릭랜드의 행동이 도덕적, 사회적으로 크나 큰 잘못이며, 그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스트릭랜드를 기다린다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필요에 따라 설득도 하고, 간청도 하고, 권고도 하고, 충고도 하고, 훈계도 하고, 욕도 하고 화를 내며 비꼬기도 할 작정이었지만, 그는 '그 따위 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스트릭랜드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파리로 온 이유였다.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면,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연봉을 받으며 주말마다 조기축구회에 꼬박꼬박 다니던 아재가,
돌연 영국으로 가버리는 거다. 이유는, 축구를 하고 싶어서.
취미와 특기의 그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하기는 쉽지만, 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넘었을 때의 파장을 견딜만큼 우리는 강하지 못하다.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힘은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이었고,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를 꼼짝할 수 없게 사로잡고 있었다.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스트릭랜드는 후자였다.

그의 진짜 생활은 꿈과 잠시도 쉬지 않는 그림 작업, 이 두가지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매슬로우의 5가지 욕구이론에 따르면, 욕구는 순서대로 충족이 되어야 한다고 되어있지만,
그는 오로지 5단계의 '자아실현의 욕구'만을 추구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부었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결국 그는 사후에 굉장히 위대한 화가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프랑스의 후기 인사앞 화가 '폴 고갱'을 모티브로 한 책 '달과 6펜스'
이 책의 제목인 달과 6펜스에서, '6펜스'는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가치가 하찮은 은화의 값이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는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스트릭랜드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거부하는 세계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파렴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양심의 기준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을 떠나지 않고도 그림 공부를 하였을 수 있다. 그랬더라면 오히려 아내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윤택한 생활을 하며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락의 대가로 그는 세속 사회의 인습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그는 세속 사회의 가치와 평판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그가 일상의 불편과 세속적인 고통에 강한 것은 문명의 가치와 편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속과 인습의 가치로부터 이미 자유로웠고, 죽음으로 그의 삶은 더 의미있게 고양되고 완성되었다.

현실을 거부하고 내부의 충동대로 살고 싶은 나의 꿈을 대리 실현시켜주는 스트릭랜드를 보며
영혼의 세계와 순진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열정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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