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월요일과 목요일, 아이 손을 잡고 집을 나서 교문 앞까지 배웅한 뒤 곧장 피아노 학원으로 간다. 부지런한 원장님이 틀어놓은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계단을 올라 2층에 위치한 학원의 육중한 유리문을 연다. 문 위쪽 끝에 달려있는 종들이 딸랑딸랑 울림과 동시에 안으로 들어가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고 뒤로 돌아서면 어김없이 원장님이 나타나 방문일지에 나와 본인의 이름을 쓰고 체온 체크를 하기 위해 비접촉식 온도계를 들고 서 계신다. 그 곁에서 손 소독을 하고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간단한 안부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레슨실로 이동해 피아노 앞에 앉아 의자의 위치를 조정하고 가져온 캔버스 천 가방에서 교재들을 꺼내 악보대에 올려놓는다. 체르니, 소나티네, 별도의 연습곡 수순으로 레슨을 받고 남은 시간 동안 혼자 연습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주 2회 꼬박꼬박 하고 있다. 글쓰기는 업으로 삼고 싶어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 취미 아닌 취미라면, 피아노는 그 어떤 결과도 바라지 않고 연주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가장 순수하고 즐거운 취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주 2회 레슨, 연습량의 문제도 있겠지만 진도가 빨리 나가지는 않는다. 주로 체르니와 소나티네를 치지만 원장님이 종종 인쇄된 악보를 가져오셔서 연습곡도 쳐 본다. 영화 <LaLa Land>의 OST 한 곡과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Adios Nonino', 해리포터의 'Lumos' 같은 곡을 연습했고 지금은 아이가 매우 좋아하는 캐러비안의 해적 OST 'He's a Pirate.'의 막바지를 연습 중이다. 오늘도 새 악보를 하나 받았다. 게임 Undertale의 'Megalovania'라는 곡인데 들어보니 아는 곡이었다.
이 곡을 쳐보고 싶다고 원장님께 요청한 아이는 초2학년 남자아이인데, 지난번에 쳤던 해리포터의 음악도 이 아이가 원했던 거라고 한다. 우리 아이가 캐리비안의 해적 OST를 듣고 피아노로 쳐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처럼 다른 아이들도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직접 연주해 보고 싶은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 아이 덕분에 평소 연습하던 곡들과 다른 분위기의 경쾌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곡들로 감각적인 연주에 도전해 본다. TV 등에서 가끔씩 들었던 곡인데 직접 연주하니 새로웠다.
얼마 전, 누구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 권위 있는 전문가가 쓴 글에서 보았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 특히 아들의 게임을 걱정하고 많이 다툰다고 한다. 실제로 1학기 때는 뛰어노느라 여념이 없던 아이들이 2학기가 되어 부모들도 하나 둘 놀이터에 따라 나오지 않게 되고, 너도나도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놀이터의 벤치나 바닥에 삼삼오오 모여 폰을 들고 게임을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고 있다. 나도 아들을 둔 입장에서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가급적 늦게 마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그 전문가는 뭐든 열심히 하는 아이가 게임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별다른 의욕이 없는 아이는 게임도 안 하는 반면 다른 일에도 소극적인 반면 매사 열정과 호기심이 있는 아이가 다른 일만큼이나 게임도 많이 한다는 말이다. 피아노 학원의 이름 모를 초2학년 아이가 수시로 원장님께 요청하는 악보를 이어받아 쳐 보면서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도 같았다. 매사 열심인 아이이기에 게임을 하면서도 음악이 궁금해 제목을 검색하고 직접 쳐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학원에 와서 부탁을 한 것이 아닐까?
덕분에 들어보기는 했지만 제목도 어디에서 유래된 음악인지도 몰랐던 곡을 신나게 배웠다. 남자아이가 치기에 딱 신나고 호쾌한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한 남자아이가 피아노 앞에서 신나게 건반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다 사라졌다. 이 극적인 음악이 도대체 어떤 장면에서 나오는 걸까? 덩달아 'Undertale'이라는 게임의 스토리도 궁금해졌다. 이런 식의 확장과 연결이라면 게임이나 아이가 소비하는 콘텐츠들을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곡을 끝내면 그 아이의 관심사는 또 어디로 옮겨가 있을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익숙한 틀의 바깥으로 한 발짝 나가는 것이 점점 부담스럽고 어려워지는 나이에,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새롭고 배워야 할 것들로 여겨질 누군가의 취향을 이어받은 덕분에 혼자였다면 결코 한 번도 쳐 보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도전을 해 보았다. 클라우의 소나티네도 충분히 아름답고 감미롭지만, 막 무언가가 시작될 것만 같은 'Megalovania' 지금의 내게도 꽤 괜찮은 선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