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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Aug 09. 2021

무한한 여덟 살의 여름

제1사분면의 삶

인생의 진정한 첫여름방학을 맞은 무한 여덟 살(올해 초1인 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말)은 엄청나게 뜨겁고 아주 반짝 신나지만 대체적으로 매일이 비슷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엄마(나)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지만 시골에 있는 외가 덕분에 특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지요. 더군다나 유년이 지나면 그 즐거움도 끝나버릴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어린 엄마는 방학마다 부모 아닌 따스하고 우호적인 어른들(이모와 할머니)의 시선을 넘나들며 자유와 해방감, 탐험이 주는 짜릿함을 최대한 즐기고는 했고요.     

     

애석하게도 무한 여덟 살에겐 그런 장소가 없네요. 집에서 차로 20분 내 거리인 광역시의 아파트에 사는 분들을 조부모로 두었거든요. 2-3주에 한번 가는 친할머니 댁에서는 집에는 없는 TV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환경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에 놓일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네요. 모처럼 휴직한 김에 특별한 방학을 선사해주었어야 했나 후회 반, 합리화 반인 엄마 마음과 무관하게 아이는 가끔은 세상 지루한 표정을 짓고 뒹굴거리다가도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면 생기를 가득 담고 반짝거립니다.      

     

늘 혼자 놀던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면서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 아이보다 학원을 더 다니고 있어서 일과가 오후 늦게야 끝나기 때문에 아이가 놀고 있으면 합류하지요. 최근 그중 한 아이에게 휴대폰이 생겨서 오전에도 수시로 저에게 연락이 와서 '놀 수 있는지' 묻습니다. 무언가를 하다가 나중에야 그 메시지를 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요. 우리 아이도 주 1-2회 오전 방과 후 수업이 있고 정오 무렵, 피아노 레슨을 다녀오기에 주로 만나게 되는 건 오후 늦은 시간이 되네요.     

     

여름휴가 전에는 그 아이들의 엄마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같이 어울리던 한 아이가 긴 여름휴가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연락이 자주 오는 아이의 엄마는 최근 긴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해서 놀이터에 앉아 대기조를 하는 건 주로 저 혼자입니다. 오후 4시 반이 넘어도 여전히 몸을 납작하게 눌러버릴 것만 같은 더운 기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아 아이는 수시로 물을 마시고 갑니다. 더워도 너무 더운 날이죠. 그래도 하루 중 가장 생기 가득한 아이의 시간을 덥다고 뺏을 수는 없네요.     

     

아이에게 있어 이 시간은 즐거우면서도 당황스러운 순간일 겁니다. 아직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기엔 어린아이가 자신과 달리 매사를 분명하게 요구하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을 때면 때로 심하게 감정적으로 표현을 하고 마는 친구와 부대끼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을 호소하지 않기에 가급적 개입을 하지 않은 채 곁에서 보고 있지만 종종 아슬아슬할 때가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의 놀이와 관계는 세상 즐겁다가도 곧 몸싸움처럼 되는 일이 많은데 그 친구와 어울릴 때면 제 마음이 자주 불편해지네요.     

     

제 아이가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아 할 때, 그 친구는 집요하리만큼 아이를 몰아세워 결국 양보를 얻어냅니다. 갖은 짜증과 화를 다 쏟아내면서요. 얼마 전 엄마가 복직을 한 아이의 입장도 생각을 해 보지만 정도가 과할 때는 저나 다른 엄마가 가서 달래기도 하죠.  몇 달간 그 친구를 지켜보니 자기애가 많이 강하고 반대 의사가 나오면 그 자체를 견디지 못하고 욱하는 성정이더라고요. 아이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이고 또 자주 볼 사이이기에 조심스럽지만 필요할 땐 애정을 담아 어른 노릇도 합니다.     

     

반대로 무한 여덟 살님은 요샛말로 순한 맛입니다. 마냥 당하고만 있진 않지만 대체로 의견이 대립될 때면 져 주는 편입니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물어보면 잠시 답답하거나 화도 나고 당황스러웠지만 곧 괜찮았다고 합니다.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잊어버립니다. 다음에는 너도 의견을 확실히 해 보란 말에 자신을 믿어보라고 합니다. 남의 말을 들어주거나 양보할 수 있는 마음은 좋은 것이죠. 문제는 유년의 상처를 품은 엄마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네요. 아이에게 저를 자꾸만 이입하고 마는 것이죠.     

     

수위가 아슬아슬해서 나서서 개입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면 엄마가 있다는 것을 떠올릴 테니까요. 아이를 보면서 지난날의 저를 조금씩 이해해 갑니다. 내게 함부로 하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하는 것은 '약하고 못나서'가 아니라 애초부터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성정이 아니기 때문임을 이제야 알아차립니다. 그런 저를 바보스럽다고 느끼게 된 것은 도대체 어떤 일들과 어떤 말들 때문이었을까요?     

     

사람에게 친절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써먹었던 사람들. 그런 관계를 지켜보며    

"아이고, 이 바보야. 너도 당당하게 할 말 하고 네 것 다 퍼주지 말고."     

등을 찰싹 때리며 안타까워 한 엄마의 마음, 가슴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아버린 사람에 대한 슬픔과 서운함... 어느새 자라나기 시작한 분노. 그 모든 것들을 품고 스스로를 '바보'로 여기게 된 내가 결코 당하지 않겠다며 자신을 날카로운 가시 속에 가두려 했던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친구에게 휘둘리고 당하기만 하는 것 같아 속상한 나머지 남편에게 몇 마디 속삭이는 것을 주워들은 아이가 말하더군요.      

"그래서 엄마는 OO이가 싫은 거야? 걔가 좀 제멋대로 긴 하지만 좋은 점도 많아."     

"네 마음이 힘들까 봐 그렇지. 큰소리로 우긴다고 다 들어주지 말고 너도 네 건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어."   

"알겠어. 그럴게. 날 좀 믿어봐."     

     

어쩌면 염려라는 마음이 앞서는 바람에 아이에게 스스로에 대한 불신부터 가르치려 했던 것이었을까요? 자신을 잘 표현하고 의사를 관철시키는 힘이 좋은 사람이 훨씬 더 유리한 이 세상살이에서 너는 그런 점이 부족하니 노오오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스스로를 무한 여덟 살로 명명한 아이가 자신을 믿어보란 이야기에 든든한 한편 왠지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막 관계를 시작한 아이에게 엄마로서, 조금 더 먼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상처 받고 사랑해본 사람으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한참 놀던 아이가 이마와 목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달고 뛰어와 잠시 앉았습니다. 가방 속 시원한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엄마, 나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쉴래."     

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를 따라 달려온 친구가 다급하게 손을 잡아끌며 호통을 쳤습니다.     

"야! 너 안 놀고 뭐하냐? 빨리 안 올래!"     

비슷한 상황에서 다짜고짜 화를 냈던 그 친구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아이는 '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알았어."     

라고 말했습니다. '힘들다면서 그냥 좀 쉬지!'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아이는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물통의 물을 한번 더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빨리 놀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통의 물을 들이켰습니다. 천천히 여유롭게 달고 시원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더니 제게 물통을 건네주면서 말하더군요.     

"엄마, 나 놀고 올게."     

"어. 으응, 그래. 재밌게 놀다 와. 목마르면 또 물 마시러 오고."     

이번에도 친구가 하자는 데로 따라갔지만 아이의 그 마음이 '심약해서' '바보 같아서'는 아님을 알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무한한 여덟 살의 앞날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아이를 잘 지켜볼 수 있는 곳에서 덥고 지칠 때면 언제든 뛰어와 갈증과 피로를 날릴 수 있는 시원한 얼음물과 자리를 마련해 두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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