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이름은빨강 Jan 05. 2021

정인이를 생각하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존재 의미를 인정하지만 드라마틱한 요소를 강조해 본질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방송의 행태가 싫어서  보지 않는다. 사건이 심각할수록 본질은 빠져나가고 분노나 증오 같은 감정만이 채에 걸러져 자극적인 방식으로 SNS 통해 재생산되고 확대되며 사회 불신으로 증폭되는 것을   왔기 때문이다.

특별히 냉정하거나 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반대이기 때문에 자중하는 것에 가깝다. 감정에  휘둘리고  것을 남에게 투사하는 것도 나의  특징이고 한계임을 이제는 안다. 어떤 청원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이 직접적으로 올 때, 잠시라도 시간을 들여 상황을 살피고 동참을 하던 안 하던 결정 한다.

어제 내내  정인이 진정서 관련 내용들을 SNS 통해 보았다. 보도를 통해 사건을 접했고 회사 동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영상이나 사진으로  은 처음이었다. 입양 전과 후의 사진에서 정인이의 변화를  순간, 나도 모르게 입술이  깨물어졌다.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사람이 이렇게 변한단 말인가?

아동학대와 각종 폭력사건들이 일어나고 일부는 주목받지만 상당수는 알지도 못한  묻힌다. 공익광고에서 주변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하지만 우리나라가 법은 강력한 친권(가부장, 가족중심주의적 사회관) 근거하여 제삼자가 학대 아동을 가까스로 구출한다고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다시 부모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일들을 알고 직면한다 한들 무엇을   있단 말인가? 언론에 주목받는다고 해도 나를 포함 대중들은 반짝 흥분하고 국민청원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조금 올바른 일을  자기만족을 느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소 팔짱을 낀 채 회의의 지대에 머물러 있고는 했다.

어제, 많은 지인들이 봉투 하나둘씩 준비해 진정서를 쓰고 우체국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에게는 묘한 감동이 있었다. '그래 봤자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마음이 '그래도 뭐라도  보자.' 마음으로 바뀌었다.

예전부터 편지  쓴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진정서라기보다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감정은 조금 덜고 진심은 넉넉히 담아 진정서를 쓰고 보냈다. 그러면서 소망했다. 정인이가 지금은 두렵지 않기를. 어른들이 도구화해 버린 너무 짧은 삶을  잊고 편히 잠들기를. 그저 자기 위안일지라도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문자 한 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