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희망과 절망을 생각하다
새벽에 일어나 어제 끓여놓은 작두콩차를 데워 글 쓰는 자리에 앉았다. 그림책 한 권을 골라 천천히 읽고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단상에 맞는 페이지를 필사하고 기상 인증을 위해 핸드폰을 가지러 갔다. 밤새 쌓인 수많은 문자와 알림 사이, 아이의 검도장 관장님의 긴 메시지가 와 있었다. 대출 등으로 겨우겨우 1년을 버텼지만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고 검도장을 닫는다, 제자들 생각에 마음이 아프지만 그간 받았던 관비를 전액 환불해 드린다 내용이었다.
아이가 검도를 하고 싶다고 해서 8월부터 약 반년을 다녔다. 코로나 확산 추세에 따라 시의 방역 조치로 연말, 실내체육시설 폐쇄명령에 의해 보내지 못한 것이 몇 주가 넘었다. 시행기간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언제 끝날 지 모를 긴 터널 속을 헤쳐가는 것이 관장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 전 마주친 헬스장(검도장과 같은 층, 관장님이 운영하시는 곳) 관장님도 배달 일을 하고 계셨던 걸 보면 어렵게 버티신 것이 짐작이 간다.
젊음을 바쳐 운동을 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은 한 사람이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그간의 고민과 고통은 어떤 것이었을지 개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염려가 밀려왔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에 드는 사람과 공간을 통해 할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할 것에 대한 엄마로서의 답답함도.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들을 자꾸만 하나씩 앗아가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언제까지 우리의 삶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스타워즈>로 한동안 뜸하더니 얼마 전 도서관에서 어떤 형이 빌려가는 것을 본 뒤, 다시 불붙은 <마법천자문>을 읽어주느라 요즘 내 목이 성치 않다. 어젠 무려 네권하고도 반을 읽어주었다. 한자를 알겠거니 하는 기대는 1도 없고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교육적으로 괜찮을까 하는 의심도 들지만 거대 서사의 인물과 이야기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상황을 유추하는 것을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놀면서 날리는 한자마법을 받아쳐 주는 재미도 한몫하고.
<마법 천자문>에는 108 요괴의 악마 원념을 흡수한 대마왕이 나오는데 그는 사람들의 절망을 먹는다. 어차피 질 텐데 싸워봤자 소용없을 텐데 좌절하는 마음을 먹고 더욱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진다. 여름이 오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믿었던 바이러스가 1년이 다 되었는데도 해소의 기미는커녕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기대했던 많은 것들이 기약 없는 미래로 밀려났다. 바이러스와 대마왕의 공통점은 자꾸 세지며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시대. 끝없이 무언가가 사라지고 멈춘다. 사라진 이들, 많은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잃어버린 우리들의 시간은 되찾을 수 있을까? 결국 이 시기도 끝나겠지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아이의 만화에서는 순수한 마음과 희망이 모든 것을 극복한다지만 삶은 희망과 진심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도대체 무엇일까? 관장님에게 보낼 답장을 한참 고민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