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민들레 법칙과 우리 '같이가치' 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곰출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정리해서 글 씀.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자신이 부딪혀 해결해야만 하는 ‘혼돈’의 시기를 만나게 된다. 나도 성인이 된 후로, 10년이라는 주기로 ‘혼란’에 빠져들곤 한다. 10년 전, 나는 따뜻한 5월 햇볕 아래에서도 마음이 시린 사람이었다.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메워지지 않는 ‘혼란스러움’을 어떡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배려 깊은 내 반려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은 따뜻하고 경이로웠다. 고양이 삶이 풍요로워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덜컥, 생소했던 ‘구피’도 무료 분양받았다. 가끔 어항 앞에 앉아 구피를 넋 놓고 바라보면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 구피들도 하염없이 직진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럴 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신비로워 보이는 보랏빛 심연 속으로 홀린 듯, 끝없이 헤엄쳐 내려가는 인어가 그려진 표지는, 나를 마치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초대해 주는 듯했다. 읽고 싶은 호기심을 품고만 있다가, 드디어 7월 초, ‘스프링클러 설치’ 공사로 시끄러운 도서관 한쪽 구석에서 첫 장을 펼치게 되었다. 첫 장에서 나를 맞아 준 단어도 역시 ‘혼돈’이었다.     


1906년 4월 18일 오전 5시 12분, 샌프란시스코에 7.9 규모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수십 년에 걸쳐 모아 놓은 어류 표본 단지가 쏟아지고 깨지면서, 한 남자에 의해 명명 받은 이름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수많은 물고기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 혼란스러운 중에도 침착하게 물고기들을 들어 올려, 자신이 부여한 이름을 다시 물고기에 꿰매는 한 남자가 있다. 평생 ‘혼돈’의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던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었다. 어렸을 때 천문학에 심취해 자신의 중간 이름에 ‘star’를 넣어 별처럼 빛나고자 했던, 일생을 명망 높은 ‘어류 분류학자’로서 세상의 ‘빛나는 별’로 살다 간 남자.      

한 젊은 여자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인 아버지로부터 “넌 아무것도 아닌 존재, 거대한 우주라는 시간 속에서 곧 사라져 버릴 티끌 같은 존재”라는 말을 들 으며 자란 여자.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젊은 날의 유일한 사랑을 잃고 방황할 때, 우연히 데이비드에 관해 알게 되었다. 관련 도서들을 읽으며 자신의 혼란스러운 삶에 마침표를 찍어 줄 수도 있는 ‘빛나는’ 안내자로서 데이비드를 받아들이는 여자 이름은 룰루 밀러. 이 책을 쓴 저자다. 


룰루는 든든한 삶의 안내자 데이비드가 보여 주는 질서의 세계를 연구하다가, 수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학장의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자 부인을 독살하고 은폐를 시도했던 살인범이자, 미국에 처음으로 우생학을 도입하고 열렬한 옹호자로 활동했던 데이비드의 명성에 가려져 있던 위선과 오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생학은 1883년 찰스 다윈의 고종사촌인 영국 과학자, 프랜시스 골톤이 만든 단어로, ‘좋은’과 ‘출생’을 뜻하는 그리스어를 조합해 만들어졌다. “백치들은 몰살해야 인류의 종이 발전한다”라는 무자비한 우생학과 이러한 우생학에 반대하는 학자들과의 이견 핵심은 <종의 기원>에서 비롯되었다. 다윈은 어떤 환경에서도 퇴화하지 않고, 진보하는 종의 가장 큰 특징으로 유전자에 생긴 ‘변이’를 꼽았지만, 우생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진화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았던 데이비드의 권고로 미국 전역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던 사람들은 은밀하게 불임 수술을 받게 되고, 장애아들은 태어나자마자 방치되어 죽게 되는 일들이 생겨났다. 저자 룰루는, 데이비드의 행적에 따라 우생학이 들끓던 시절, 수용소에서 지체 장애로 불임 수술받았던 여자들을 만나면서 우생학의 잔인함과 오만함을 재발견하고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면서 ‘민들레 법칙’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 집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227p.     


룰루는 데이비드의 추악한 이면을 발견하게 되면서, 정의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진다. 그런데 평생을 어류 분류학자로서 엄청난 업적을 이룬 데이비드의 일생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일이 생기게 된다. 바로 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이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깨달은 것이다. 모든 생물이 진화의 나무에서 어느 가지에 속하는지를 밝혀내는 분기학자들이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 중 다수가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룰루는 처음에는 자신의 혼란한 삶에 질서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안내자로 데이비드를 발견했으나, 결국에는 자기기만에 빠져 많은 사람을 불행에 빠뜨린 오만한 우생학자로서의 데이비드를 발견하고, 글로써 세상에 폭로했다. 이 글을 쓴 룰루 밀러는 과학 전문 기자로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했고, 이 책으로 '2020년 최고의 책'이라는 많은 찬사를 받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홀린 듯 심연으로 헤엄쳐 내려가던 표지의 인어 모습 위로 저자의 모습이 겹쳤다. 저자 자신이 인어가 되어, 위험이 도사릴 수도 있는 깊은 심연 속으로 용감하게 헤엄쳐 들어가 우리에게 ‘왜곡된 진실’을 알려 주었다. 룰루도 처음부터 용감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 삶의 ‘혼돈’을 인식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삶의 혼돈은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마주하느냐에 따라, ‘빛나는 성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이다. (250p.)



작가의 이전글 민들레 법칙과 우생학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