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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꽃보다 또또, 그리고 고양이

- 또또 / 조은 지음, 로도스 - 를 읽고

나에게 강아지가 반려견으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여름때쯤이었을까? 

뜨겁게 달아오른 한 낮의 더위가 방안으로 무자비하게 침투하면서 내 영혼도 거침없이 표백당하고 있을때, 우연히 누른 리모컨에서 조그마한 개 한 마리와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유모차 강아지' 할머니의 껌딱지, 강아지는 언제나 할머니가 가는 곳마다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혼자 사는 할머니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있었다. 할머니가 어딘가로 외출했을 때는 전철역 입구에서 낡은 유모차에 앉아  할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꼼짝않고 기다리는 모습은 순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온전한 사랑.  

내가 어릴때부터 꿈꾸던 '온전한 사랑'이 강아지들 세계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일요일에 하는 <동물농장>을 빠짐없이 보면서 강아지와 반려인 간의 애틋한 교감에 눈물짓고, 감동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예쁜 강아지와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올 여름에 작고 예쁜 강아지 대신,  조금은 시큰둥하고 까칠한 수컷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인생속으로 쑥 들어오더니, 나는 순식간에 빠져들면서 사랑하게 되었다. 여름 끝자락을 잡고 가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오면서 운명처럼 나비는 나에게로 와서 내 고양이가 되었다. 우리는 분홍끈으로 이어진 어쩔수 없는 묘연이었던 것이다. 

   

얼떨결에 고양이 엄마가 된 내게 조은 시인의 <또또>는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었다.  

또또가 산책을 즐겼을 인왕산 흙을 닮은 표지를 보면서, 코를 맛나게 킁킁거리는 또또와 그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조은 시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눈시울이 또 시큰해진다.  

   

이 책은  예민하고, 강아지로서는 가져서는 안될 자존심을 가진, 작고 사랑스러운 강아지 또또와 한 시인의 17년간의 사랑이야기다.  

시인이 한때 세들어 살았던 집에서 갈색 실꾸리 같았던 작은 강아지가 학대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두 존재의 오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주인에게 학대당하는 또또를 조용히 지켜주던 시인은 근처 낡은 한옥집으로 독립하게 되고, 또또도 데리고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가장 힘 센 보호자로 자리하게 된다. 

   

한 생명을 평생토록 책임진다는 것은 솔직히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사람의 학대로 분열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손을 무서워하며 끊임없이 물어대는 병약한 강아지는 더욱 더. 그러나 시인에게는 또또의 마음을, 행동을 읽어낼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 

   

'만일 내 눈앞의 개가 그처럼 공포감에 짓눌려 있지 않았다면?' 

'그 개가 지금껏 내가 봐 왔던 어떤 개보다 나약하고, 그것이 극도의 예민함에 뿌리를 둔  

본질과 닿아 있지 않았다면?' 

대답은 늘 같았다. 그랬다면 나는 또또를 내 삶 안으로 절대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다. 103 

   

나도 내 고양이 나비가 

추운 날씨에 다른 고양이에게 집을 빼앗기지 않을 정도로, 자기 영역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다른 고양이에게 쫓겨 두려움으로 주저앉아 얼음이 되지 않을 정도로 용감했다면,  

나비는 내 고양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고양이에게 매서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내 주고,  

다른 거친 대장 고양이에게 쫓겨 다니며, 복도에서 슬프게 울어대는 나비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비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또또는 건장한 남자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가지고 있었지만, 산책길에서 만난 무서운 남자로부터 씩씩하게 시인을 지켜내었고, 의료사고로 죽을 고비까지 이르렀지만 혼자 남아 외로울 시인을 지켜주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면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한 존재의 다른 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때로는 죽음까지도 이겨내는 법이다.  

   

자신의 평생을 시인의 옆에서 일상이 되어주고, 사랑이 되어 주었던 또또는 세월속에서 힘겹게 늙어가고, 시인과의 슬픈 이별을 준비한다. 시인도 최선으로 자신의 곁에 머물러준 또또에게, 

  

"또또야. 오래 오래 살아. 나 이젠 너가 하나도 힘들지 않아. 처음부터 너랑 이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해."  169.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또또는 엄청난 고통과 싸우면서도 시인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다가, 그 마음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조용히 떠나간다.   

   

이 책은 시인이 또또의 빈자리에 그렇게나 상냥하고, 명랑하고, 예쁘고, 포근하고, 사교적이었으며, 어느 순간에도 자존심을 잃지 않고, 극도로 '사랑스럽게 예민했던' 한 강아지를 기억하면서 마음으로 떠내려간, 담담한 글이다. 페이지 곳곳에서 눈가에 눈물이 맺히면서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사랑이란 어떤 자리에 존재하든지 아름답고 아픈 것이다.  

  

동등한 한 존재와 한 존재가 서로에게 치유가 되고, 사랑이 되는 책. 

   

방울방울 눈물로 책을 덮고, 무심코 방안을 둘러보니, 어느새 방안으로 들어온 나비가 

분홍 꽃이불에 앉아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예쁘다. 

   

꽃보다 고양이...그리고 또또. 

아프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책이다.


2013년 12월 31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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