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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인 Nov 19. 2020

6. 평안의 민낯

불안정한 마음

‘백수 호號’는 순항 중이다. 백수 호 주변으로 흐르는 물결은 고요하리만치 잔잔하다. 얼른 물속으로 들어가 고기를 잡아 올리라는 사람도 없다. 배 한 쪽에 자리 잡은 공간에는 망망대해에 조금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식량과 생필품들이 있다. 바람은 배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밀어주는 정도의 것이다. 햇빛으로 달궈진 바닥에 앉으면 달궈진 온도가 마음도 데워준다. 나를 쪼아대는 새들도 사라진 지 오래다. 유유자적 움직이는 내 배를 보고 한심하다며 혀를 차는 주변 사공도 없다. 가끔은 수면 아래에서 고래의 웅장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망망대해로 나왔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움이라고 자부하며 혼자 뿌듯해한다. 그렇게 나의 항해는 끄떡없었다.



그런데 그 끄떡없던 배가 걸어 다닐 때마다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배 한쪽에서는 물이 촘촘히 스미며 올라온다. 물이 새는 지점을 메꾸기 위해 이리저리 구멍을 찾아보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여전히 물결은 잔잔하고, 물고기를 잡아 올릴 필요 없이 먹을 것이 가득하고, 바람은 순하고, 나를 쪼아대는 새들도, 허둥지둥 움직이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주변 사공도 없다. 웅장한 고래 울음소리도 여전히 수면 아래서 깊은 진동으로 타고 올라온다. 다만 나를 경이롭게 만들던 그 울음소리가 밤마다 공포로 다가온다. 고래의 마음이 공포였기 때문일까, 듣는 나의 마음이 나도 모르게 공포로 변해서일까.




“와, 쉬니깐 피부 좋아진 것 좀 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건네는 말로,

“왜 갑자기 성인군자가 되셨어요?” 여전히 전 직장에서 괴로워하는 직장인 A 씨가 건네는 말로,

“그래도 돈 많이 모았나 보다. 저번보다 덜 초조해 보여.” 화장대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이모가 건네는 말로,

“직장 그만두면 00 님처럼 저도 평안해질 수 있나요?” 직장인 A 씨 건너 건너편의 자리에서 괴로워하는 직장인 B 씨가 건네는 말로, 나는 그들의 ‘즐기는 백수’ 조각상이 된다. 백수가 되고서 들었던 말들은 대개 나를 긍정적이고 고민 없는 행복한 사람으로 꾸며준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직장을 다니며 체력적으로 병행할 수 없었던 요가를 꾸준히 하며 몸의 호사를 누린다. 돈을 벌 때보다 벌지 않았을 때의 식사는 더 풍족하고 건강하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자유스러움이 내 시간에 묻어있다. 나를 옥죄는 업무의 데드라인도, 상사가 내풍기는 ‘나 지금 무척 예민해’의 분위기도 내 공간에서 사라졌다. 가족들은 예전처럼 긴 휴식의 마침표를 서둘러 재촉하진 않는다. 계좌에 있는 돈은 앞자리가 달라질 때마다 가슴이 한 번씩 쿵 내려앉지만 그래도 겨울을 나기에는 충분하다고 내려앉은 마음을 금방 주워 담는다.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시간을 왜 포기하냐며 퇴사를 말리던 팀장과의 면담에서 “저는 이제 미련 없어요. 다음 직장 안 구해지면 연봉 낮추면 돼요.”라며 직장에 대해 그리고 업에 대해 내려놓은 마음도 차분히 진행 중이다. 치열하게 여기저기서 끌어왔던 나에 대한 욕심이 파산에 가까운 무無의 상태가 되었다. 각자의 직장 스트레스를 메신저로, 말로 풀어내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농담 반, 진심 반을 담아 갓 요가를 배운 허세로 ‘나마스떼’를 외치며 그들의 평화를 빌며 나의 평안을 자랑하기도 한다. 나 이렇게 평안해, 나 이만큼이나 평화로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매번 취하는 수면 속의 나는 평안하지 않다. 깨어있는 나는 평안하다고 자부하는 생활을 영위해놓고 막상 잠이 들면 밤하늘 아래 누구보다 더 격렬한 상황에 부딪히며 생존해나간다. 가령,


밧줄을 잡고 암벽을 타고 내려와야 겨우 탈 수 있는 지하철

불구덩이가 몸으로 날아와 겪게 되는 산 자의 세상이 아닌 곳

집채만 한 파도를 맨몸으로 마주해야 하는 순간

수상했던 아저씨가 던지는 칼날의 움직임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죽이는 누군가를 피해 몸을 숨겨야 했던 공포




고통이 몸에 가해지는 꿈을 꿀 때면 꿈에서 현실로 건너오는 시간이 꽤 빨랐는지 깨고 나서도 그 부위가 잠시 아프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생생했던 꿈의 경험이 몇 분 사이 동안 희미해질 때 까지 손으로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다가 다시 잠이 든다. 그럴 때마다 늘 가슴과 정신이 들떠있어 단편소설 류의 꿈을 연속적으로 꾸며 선잠을 자버리게 된다. 그 짧은 시간 마디마디마다 나는 늘 도망가거나, 피하거나, 얼어붙은 채로 공포에 맞선다. 어떤 날의 나는 내가 만들어놓은 여러 명의 나를 피하기 위해, 나를 지켜보는 무심한 눈빛의 파수꾼들을 피하기 위해 격렬히 도망쳤다. 깨어나 보니 전날 밤 꼭 동여맨 머리끈이 침대 모서리에 간신히 걸쳐져 있었다. 지난밤 꿈속에서 간신히 죽지 않고 피한 내 모습을 대변해 준다.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내 두피에 매달린 검은 머리카락들은 알고 있을까. 내 몸짓에 휘저어진 크림색 이불은 알고 있을까. 높은 데서 모든 순간을 지켜보았을 옷걸이는 알고 있을까. 머리를 묶으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누구를 피할 만큼의 거짓말을 하고 불편해할까. 거짓말을 한 상대가 누구인지는 내가 알긴 알까. 아니면 나 자신일까. ‘나는 평안해’라고 무장하던 게 사실 나에게 한 거짓말이었을까. 꿈에서 내 또 다른 수면 속 자아가 나의 민낯을 경고한다. 너는 지금 평안하지 않아.



채소코너에서 감자를 담으며 겨울을 충분히 날 수 있는 돈을 머릿속으로 다시 세어본다. 책상을 옮기고 액자에 그림을 끼워가며 집을 아늑하게 만들어가는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 책상을 중고로 팔고 액자를 포장하는 나의 모습이 중첩되어 따라다닌다. 깜깜한 요가원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명상에 잠길 때마다 퇴사하고 지금까지의 빈 시간을 면접관들에게 어떻게 풍요롭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혼자만의 면접에 잠긴다. 평안을 추구하는 행위 안에서 나는 여전히 불안을 일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안녕한가’ 밥알이 말라붙은 그릇을 힘주어 닦으며 잡념을 떼어낸다.

'나는 지금 안녕한가' 화장실 타일 사이에 낀 물 때를 솔로 박박 닦으며 불안을 지워본다.

'나는 지금 안녕한가'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한곳으로 모으며 머릿속 미세한 고민을 쓸어내는 상상을 해본다. 실은 분주하게 움직여 꿈도 못 꾸게 내 몸을 지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면의 평화를 몸부림치며 빌어본다.



나는 안녕하기 위해 무엇의 조치가 필요할까. 계속 물이 새고 있는 구멍을 발견하기 위해 다시 내 배를, 내 마음을 찬찬히 탐색해본다. 백수의 마음은 맹렬히 이는 파도처럼, 하늘로 솟은 물줄기의 가장 높은 지점과 거품을 물고 땅으로 내리치는 바닥의 지점 사이에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불완전한 운동임을 느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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