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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인 Oct 05. 2020

4. 백수의 월급

수고로운 마음

재난지원금을 받으러 터덜터덜 동사무소로 향했다. 평일 낮에 동사무소에 방문해 볼일을 본다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지하 강당 밖으로 길게 늘어진 의자에는 마스크를 쓴 중, 노년층의 사람들이 대부분 앉아있었다. 내가 그중에서 제일 어렸다. 



(동사무소 직원) 어르신, 재난지원금 문자 받고 오신 거죠?

(어르신) 아니, 나라에서 돈 준 다카길래 온 건데요.

(동) 네, 그러니깐 문자는 받으셨어요?

(어) 문자? 쓰읍…문자..? 모르겠는데..

(동) 네, 그럼 주민등록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어) 주민등록증..?(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근데 나라에서 얼마 준대요?

(동) 어르신, 저희가 우선 확인해보고 알려드릴게요. 일단 자리에 가 앉아계시면 성함 불러드릴게요.

(어) 응..근데 이거 언제까지 준답니까?



기한은 오늘까지라고 직원이 모두가 들을 만큼 큰 소리로 얘기해도 ‘내일도 주나?’라는 대화가 반복된다. 똑같은 대화 세트가 여러 번 돌고 나서야 내 이름이 불린다.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몇 가지 확인사항을 위해 물음에 대답하고, 연락처와 서명을 기재하고, 지원금 사용 안내지를 받아들고 나왔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재난지원금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그 밑으로는 얼굴 모르는 이들의 정치적, 경제적 견해 싸움이 난무했었다. 직장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에, 내가 받을 확률은 없겠거니 하고 먼발치에서 그들의 언쟁을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도돌이표 악보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재난지원금’은 언쟁의 본질을 싸맨 포장 쪼가리일 뿐, 각자 머릿속에 정한 대답만을 ‘정답’이라고 외치는 꼴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의 치열한 전쟁과 달리, 재난지원금을 수령하는 과정은 꽤 평화롭고 신속하게 진행됐다. 지원금을 받아들고 집으로 오는 길 내내 기분이 알딸딸했다. 공돈이 생겨 좋으면서도 뭔가 내가 받아도 되나 싶은 그런 기분. 



처음 구매한 것은 SPA브랜드의 2만 원짜리 티셔츠였다. 지원금을 쓸 생각이 없다가 계산대에서 마주친 ‘재난지원금 카드 결제 가능합니다’ 팻말을 보고 계산 직전 카드를 바꿨다. 생각해보면 공돈으로 사고 싶었던 티셔츠를 산 것인데, 사고 나오면서도 마음이 홀가분치 않았다. 이때는 지원금이 지급된 초기여서 한창 지원금 사용처 논란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나왔고, 남의 일처럼 읽었던 기사 제목들과 댓글들이 번뜩 스쳤다. 말 그대로 ‘긴급재난’을 위한 지원금인데 전혀 상관없는 사치품을 구매하거나(기준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혹은 도수치료와 같은 병원치료를 받고 나중에 보험료 청구를 해서 돈을 되돌려 받는 이른바 ‘재난지원금 재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누군가 사용 내역서를 열람해 경고하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질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금’이 가진 의미를 그나마 가깝게 실천한다면, 여전히 시끄러운 언쟁들에 대해 나만의 떳떳한 주관을 가질 수 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에게 긴급한 것이 무엇일까’ 



회사를 그만둔 상태라 아무래도 꾸준히 나가는 생활비 지출이 부담이 되긴 했다. 어떻게 하면 요긴하게 쓸지 집안을 쓱 둘러본다. 화장실에는 세수하고 이 닦고 샤워할 수 있는 용품들이 충분히 구비되어있었고, 싱크대 위는 밥과 국을 퍼담을 그릇과 요리할 수 있는 주방 식기, 깨끗하게 헹굴 수 있는 세제와 수세미가 여분으로 있었다. ‘있을 건 그래도 다 있네’라고 생각하던 찰나, 신발장 바닥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들이 눈에 띈다. 고작 이틀 지났는데 배달음식들이 남긴 쓰레기의 양이 방대하다. 한켠에는 씻고 쌓아둔 즉석밥 플라스틱 용기가 겹겹이 쌓여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쌀 안치는 것조차 피로한 ‘일’로 여겨져 그때부터 즉석밥을 하나씩 데워먹던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비단 쓰레기뿐만이 아니다. 양념이 강하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을 시켜 먹어서 그런지 늘 몸이 무겁고 개운치 않았다. 몸의 외형적인 변화를 떠나 내 몸 주변으로 흐르는 시간이 축 늘어지고 느려지며, 점점 비대해져 제시간을 가누지 못하던 참이었다. 귀찮아서, 힘들어서, 간편하게 먹었던 것들이 내 몸과 마음을 엉키게 만들고, 엉킨 생활은 또 고된 몸과 귀찮은 마음을 향해 계속 굴러갔다. 심지어 부담되던 생활비 지출에서 식비 영역이 항상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원금의 두 번째 사용처는 시장 근처 직판장이 되었다. 늘 퇴근 후에 방문했던 그곳은 나를 포함 대여섯 명 정도만이 각기 다른 코너를 서성거렸다. 텅 비어있는 마트를 채우는 건 시끄러운 댄스 음악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은 공간을 더 썰렁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감 시간이 가까울 때는 한켠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분주한 움직임 때문에 급하게 식료품을 골라 계산하고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일 낮의 직판장은 내가 알던 이곳이 이런 면모를 가지고 있었나 감탄할 정도로 활기가 가득 찼다.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물어보는 수 명의 사람들 소리, ‘오늘 낙지, 딱 30분 동안만 싸게 드려요!’ 귀에 띄는 직원의 목소리가 공간을 메운다. 여전히 댄스음악은 같은 볼륨으로 틀어져 있지만 사람들 소리에 어째 기가 한풀 꺾인 듯, 제 나름대로 꾸준히 소심하게 울려댄다. 



건더기가 풍부한 찌개 연출 사진이 찍혀있는 포장지 앞에서만 늘 고심하다가 오랜만에 흙이 묻어있는 감자, 찬물에 가지런히 담긴 두부, 시원한 냉기 속 파릇하고 봉긋한 청경채를 마주하게 되니, 내가 그동안 한정 짓고 감흥 없이 섭취해버렸던 재료의 세계가 한층 확장된 기분이 든다. 그렇게 한 손 가득 구매한 재료들을 집으로 들고 와 식탁 위에 내려놓는 과정까지 ‘나 오늘 좀 부지런 떨었네’라며 괜히 스스로가 뿌듯해진다. 더욱이 늘 식비지출로 열심히 달리던 체크카드 K 군은 재난지원금 덕분에 숨 좀 돌리게 되니, 사 온 재료들이 보너스처럼 더 귀해 보이기까지 한다. 


1kg짜리 찰보리 쌀 봉지를 가위로 뜯고, 먹을 만큼 덜어내 물에 깨끗이 헹궈 밥솥에 안친다. 최소 2년간 푹 자던 밥솥은 오랜만에 깨어 신났는지 ‘칙-,칙-’거리며 열심히 제 할 일을 한다. 감자 껍질을 벗기는 내내 흙 비린내가 풍겨온다. 양념을 물에 풀고 단단한 채소들을 먼저 넣어 푹 끓인다. 뽀득뽀득 씻기는 청양고추의 신선한 감촉이 손끝에서 느껴진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 큐브 치즈 모양을 한 두부들이 귀엽게 유영한다. 직접 요리를 해야 볼 수 있는 재료들의 면모다. 여러 재료가 하나의 음식으로서 모양새가 갖춰지면, 뒤따라 입맛 다시게 하는 냄새가 집안 가득 풍긴다. 지친 몸으로 퇴근해 집 골목길에 다다를 때, 길가로 활짝 열린 앞집 창문에서 흘러나온 냄새의 것과 닮았다. 아니면 집 건물에 들어서 계단을 오르는 동안 맡았던, 맨 위층 주인집에서 끓이던 찌개 냄새의 것과 같다. 나는 늘 퇴근하면서 그 냄새가 우리 집 문 사이로 슴슴히 빠져나왔으면 바랬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환기 안 된 퀴퀴한 냄새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오는 길에 맡았던 맛있는 냄새들의 몽타주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그나마 빨리 배달되는 메뉴를 주문하거나, 구비해둔 레토르트 찌개를 가위로 찢어 냄비에 부어 데울 뿐이다. 그 안의 담겨있는 두부 모양에 감탄할 여유조차 없었다. 때로는 퇴근길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역 주변 식당 아무 곳에 들어가 밥을 먹기도 한다. 또는 편의점에 들어가 초코바나 우유를 사서 우걱우걱 급하게 당을 채운다. 그때의 식사는 ‘나는 오늘 이 음식을 먹고 싶어’가 아닌 그저 배고파서 당 채우기 급급한 섭취에 불과했다. 늘 혼자 밥 먹는 것이 익숙하지만, 이때의 식사는 특히 사람을 스스로 가엾게 만들기도 한다. 



좁은 싱크대에서 투탁투탁 수고롭게 만든 음식들이 지금 내 앞에 차려져 있다. 갓 지은 밥에는 즉석밥이 채우지 못한 2%의 온기까지 꽉 채워져 일렁이고 있다. 귀엽게 유영하던 재료들은 푹 고아져 그들끼리 진하게 어우러졌다. 어우러진 것들을 숟가락으로 뜨는 최초의 순간은, 짧지만 수고로웠던 시간에 대한 감격으로 다가온다. 늘 시켜 먹고, 포장된 음식을 데우던 손끝에서 갑자기 요리경력자에 견줄만한 맛이 나올 순 없지만 직접 다듬고, 썰고, 끓이고의 수고로움이 묻어났기에 이 순간의 식탁은 최고로 성대하고, 몸과 마음이 일으켜지는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더욱이 나를 가엾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신을 더 귀하게 만들어준다.  



지원금 사용기한(~8.31)이 되기도 전에 애매한 370원만을 남기고 지원금 사용을 모두 끝마쳤다. 백수는 예상치 못한 월급이 너무나도 반갑고 남들이 뭐래도 참 감사하다. 지금은, 다시 쉬고 있던 체크카드 K 군을 데리고 다니며 나를 대접하기 위한 한 끼를 계속 마련하고 있다. 운동을 마치고 직판장에 들러 재료들을 관람에 가까운 탐색 과정을 마치고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점심엔 이 요리를 해볼까? 재료는 뭐 사지?’ 힘든 운동 동작을 꽤나 단순한 고민으로 버티기도 한다. 직접 음식을 차리는 수고를 더하니 일과가 자연스럽게 규칙적으로 변화하였다. 퇴사 후 밤낮이 바뀌어 엉켰을 식단의 폐해들이 어느샌가 조용히 뒷걸음질 치며 사라졌다. 양치할 때마다 신경 쓰이던 탁한 혀 색깔이 생생한 분홍빛으로 돌아왔다. 위가 감당하기 힘들었던 식습관을 개선하니 식사 후 불편하던 통증도 미미해진 지 꽤 되었다. 출근할 때마다 허겁지겁 먹었던 아침은 늘 화장실에서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었는데, 건강한 한 끼를 차려 먹는 시간을 조금씩 꾸준히 늘려주니 이제는 아침 식사가 그날 전체를 관장하는 에너지 역할을 해준다. 속은 가벼워지면서 동시에 하루를 마주하는 자세는 더 단단해진다. 더불어 먹고 나면 늘 버려지던 즉석밥 용기와 국 포장지가 줄어들어 쓰레기통이 가벼워졌다.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졌지만, 여전히 다른 부분에서 노력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너, 회사 다닐 때 늘 배고파했잖아.” 어느 날 친구가 이 말을 툭 건넸다. “그랬었나..”하고 말하는 동시에 과거 회상이 3배속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지체되는 회의에 당은 떨어지고 물만 홀짝홀짝 마시며 버텼던 한때를. 점심을 말없이 꾸역꾸역 먹어도 늘 비어있는 속을 궁금해하던 나를.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손이 덜덜 떨려 일을 멈추고 급하게 비스킷 몇 봉지를 허버허버 먹던 모습을. 그리고 친구에게 ‘배고파 미치겠어’를 안부 인사하듯 던지던 내 속 빈 대화들을. “그래서, 오늘 저녁 뭐 먹었어?” 친구가 묻는 말에 빠른 속도로 가동되던 우울한 회상 팬이 급하게 멈췄다. 대답 대신 핸드폰을 들고 열심히 뒤적거리다가 씩 웃으며 친구 앞에 자신 있게 들이민다.



 “나 오늘 이거 해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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