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전하영
기계 덩어리에 불과한 펌프에 약간의 물을 부으면 지하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물줄기가 힘차게 솟아올라 콸콸콸 쏟아져 나온다. 마중물이 없으면 펌프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다. 참 신기한 과학의 원리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마중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 마중물과 같은 작은 노력과 준비 등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어떤 마중물과 같은 귀인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도 있다.
평생교육 현장에 뛰어든 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다. 평생학습도시 초창기에 어디 보고 쓸만한 사례가 없어 좌충우돌하며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해봤다. 그런 과정에 만났던 마중물과 같은 귀인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책장 한편에 수북이 쌓여 있는 명함들을 보고 있으면 켜켜이 쌓여 있는 내 삶의 경험과 가치가 느껴진다.
이제는 나도 제법 선배축에 들어간다. 나를 마중물 삼아 이 길을 따라오는 후배들도 간혹 있다. 그들이 말해줘서 알게 되었지만... 하하하
최근 상반된 두 개의 경험이 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을 만들어낸 일들이 있었다. 하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실시한 연수에서 ‘선배 평생교육사와의 만남’이었다. 정년을 맞이해 은퇴하신 선배들이 모처럼 오셔서 평생교육사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들의 고단한 삶을 함께 겪어왔기에 무척 공감되는 시간이었다. 또 하나는 오랜만에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 평생교육사들과의 만남이었다.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처우에 부담스러운 정책과 사업이 현장에 툭툭 떨어지고 있어 피로감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마중물이 되어줄 선배의 삶도 고단했고, 힘차게 쏟아져 나와야 할 후배들의 열정도 고단한 평생교육 현장이다. 그 와중에도 가끔 기꺼이 마중물이 되어주는 멋진 동지들을 만나게 되니 버티고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중물이 되어줄 수 있는 일들을 도모해 봐야겠다.
한성근
마중물은 숭고한 배려다. 50대 중반인 나는 마중물의 중요성을 안다. 아동기에 외조부모님의 집에는 작두펌프가 있었고, 그 옆에는 한 바가지의 물이 있었다. 물을 끌어 쓰다가 몇 시간이 지나면 펌프 안에는 물이 사라진다. 사라진 물길을 연결하기 위해 펌프 윗부분에 물 한 바가지를 붓고 펌프질 하면 물길이 연결되어 다시 물을 퍼 올린다. 어릴 적 나에게는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중물의 의미와 가치를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집안에서도 마중물은 다음의 일상을 이어가는 연결고리가 된다. 상황이 더 심한 때도 있다. 주말이 영화가 유행이었다. 중고등 학교 시절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서부영화에는 자주 작두펌프가 등장했고 주변에 마중물을 넣어두는 장소가 있다. 지나던 나그네는 펌프에 넣어 물을 사용하고 다시 마중물을 채워 놓는다. 이 규칙이 깨지면 다음 여행자는 갈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곳에서 마중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물이 된다.
30대 후반에 학습공동체와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조성하는 활동을 전개할 때 마중물의 의미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안전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자연을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하는 마중물이다.
누군가 마중을 나온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마중을 나가는 물’은 물길을 연결해 일상을 유지해 주고, 생명을 지켜준다. 공동체적 삶의 방식은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마중물로 우리의 삶의 DNA처럼 남겨있어야 한다. 작은 실천이 중요하고, 내가 마중물이어야 한다. 나라는 존재가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권창숙
‘세상의 마중물이 되어라’라는 말을 누군가 내게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내가?’, ‘어디에서?’, ‘ 내게 그러한 능력이 있나?’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마중물 같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지 나만의 개념이라도 만들어보고자 이런저런 메모를 끄적여 보았다.
제일 처음 마중물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른 것은 독립군이었다. 우리나라의 독립군은 계속해서 독립운동이 유지되도록 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마중물은 어떠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리더가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일 수 있겠다. 변화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사람,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알리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리더는 그런 마중물일 수 있겠다. 그러나 리더의 자기 정체성에 따라 발현되는 리더십의 양상이 마중물로 이어질 수도 있으나 오히려 변화의 흐름을 끊을 수도 있다.
꼭 리더가 아니라도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모든 사람은 세상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는 어디에서 어떤 능력을 발현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잠시 펜이 멈춘다. 이 질문의 답을 나의 비전으로 대신한다면 나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감을 느낌으로서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활동, 자신의 일, 자신의 생활에서 긍정적인 마인드와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을 어떠한 영역 하나로 묶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양식, 중식, 한식이라고 세분화할 수 있지만 요리 또는 음식, 식(食)이라고 묶을 수 있듯이 나의 활동을 상담, 강의, 학습으로 세분화할 수도 있겠으나 교육이라 묶을 수도 있다. 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 나간다면 나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어느 곳의 리더도 아닐지라도 세상의 변화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것이라 믿는다. 마중물이라는 단어는 솔직히 무겁다. 그냥 내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뿐이다.
최정연
2017년 12월 2일, 부산 감천문화마을 골목 한 자락에 딩굴딩굴공작소의 문이 열렸다. 귀신의 집 같던 낡은 건물이 새하얀 페인트와 갤러리 조명으로 환해지고 커피 향과 사람들의 온기가 오가면서 점점 더 따스해졌다. 추운 겨울, 겨우 조그만 난로 하나에 의지해 옹기종기 모여 앉았을 뿐인데도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폭신했다. 뜨거워진 난로 위에 고구마도 굽고, 귤도 데워 먹다 보면 도란도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수다도 시작되었다.
기획 수다 ‘한술 더 떠’는 딩굴딩굴공작소의 두 번째 공식 프로그램이다.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면서 새롭게 시작할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어차피 할 고민이면 여러 사람과 함께 작당모의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재미있는 기획을 위한 수다 모임을 만들었다. 문제는 프로그램의 이름이었는데 여러 가지 의견을 내어도 마음에 쏙 들지 않아 갸우뚱하던 중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를 떠올리게 되었다. 평생교육을 기획하는 우리는 혼자보다 친한 여럿이 즐겁게 공상하며 상상할 때 훨씬 더 일이 잘 풀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제대로 채워진 게 없는 공간에서도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커피를 마시고, 끝없이 이야기 나누며 앞으로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이미 상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기획을 위한 수다 모임은 ‘한술 더 떠 친해지고, 한술 더 떠 서로를 배우는 우리’라는 슬로건과 함께 ‘한술 더 떠’가 되었다. 소박하지만 한술 더 뜨라고 음식을 권하며 친해지고, 나보다도 한술 더 뜨는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며 서로를 배울 수 있으니 재미난 작당을 위한 이름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그렇게 1탄 ‘고집’에서부터 지난달 ‘확장’까지 무려 66탄의 한술 더 떠가 진행되었다. 매달 선정된 주제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단어들이지만 즐거운 수다를 통해 기가 막힌 기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재미난 일 중에서도 특히, 5탄 ‘떠남’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학습 여행으로 이어져 ‘국제적으로 한술 더 떠’를 만들어냈다. 한 번 해보고 아니면 접지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기획이 벌써 내년이면 5회를 맞는 정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딩굴딩굴공작소를 알리는 대표사업이 되었다. 처음부터 거창한 결과물을 기대하고 준비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일들을 실현하는 과정이 책으로 소개되기도 했고 평생학습 포럼에서 발표되는 신기한 일들도 일어났다. 그보다 더 큰 성과는 공작원들을 끈끈하게 이어준 공통분모라는 점이다. 마중물 같았던 이 모임을 통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해졌고 공작원이 될 수 있었다. 이제는 또 다른 성장을 위한 디딤돌을 찾을 때가 된 것 같아 지난달 2017년 12월에서 2024년 10월에 이르는 5년 반을 이어온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더 큰 확장을 위한 종료'라며 웃으며 마무리했지만 '한술 더 떠'의 종료는 끝이 아니다. 다시 새롭게 펼쳐질 '끝의 시작'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