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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딩굴딩굴공작소 Oct 03. 2022

[작심(作心)3일] 7편. '길'

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이 길이 맞나?’

권창숙


국민학교 시절(이러면 나이가 나온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실컷 친구 집에서 놀다가 뉘엿뉘엿 해가 지면 슬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제야 집을 나섰다. 집에 잘 찾아갈 수 있다며 큰소리를 탕탕 치고 나왔는데 이 골목길이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들어갈 때만 해도 한 길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나오려고 하니 갈림길이 어찌나 많은지... 등골이 오싹해지고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이 길이 맞나’,‘혹시 큰 길이 안 나오면 어쩌지?’,‘친구한테 데려다 달라고 할 걸’ 머릿속이 하얘진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니 더 무서워진다. 이 시절엔 휴대전화도 없으니 길을 잃어버리면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걷다가 아는 길이 나타났을 때의 안도감이란 불안했던 마음과 정비례한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지만 오히려 집까지 죽어라 뛴다. 이 길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이정표가 있는 길이라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태어나서 처음 가는 길을 가노라면 중간중간 나오는 표지판이 너무나도 고맙다.

“아 이 길이 맞네. 이 길로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겠어.”

둘러서 가든 가로질러 가든 표지판이 그 길을 안내하고 있기만 하면 두려움이 반으로 줄어든다. 그러면 휴게소에 들를 여유도 생기고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많이 남으면 일부러 근처 지역에 들러 새로운 곳을 잠시 둘러보기도 한다.


바다에서는 안내 이정표의 역할을 등대가 한다. 길이라는 형태가 아예 없는 바다에서 배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등대. 망망대해에서의 등대의 불빛은 바다에 있는 이들에게는 엄청난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친구 집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가 함께 했다면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가는 길이라도 내 옆자리에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면 나는 여유를 찾으며 수다도 떨고, 오히려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에 설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고 있는 삶의 길에서 가끔 길을 잃을 듯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올라올 때 가만히 손을 잡아주고 토닥여주는 이들이 함께라면 목적지가 보였을 때의 기쁨도 몇 배가 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있다. 이 엄청난 우주 안에서 나는 너무 작은 존재이긴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아주고, 함께 길을 간다면 그들이 가는 길이 덜 힘들지 않을까.

각자의 길은 다 다르니 모든 길을 함께 갈 수는 없지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길을 잃을 것 같을 때 도움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이가 되어보는 것. 반대로 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들, 내 길을 응원해주는 이들이 주변에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미 반 이상은 성공한 삶이라 하겠다.




마음의 길

한성근


길에 대해 생각한 때가 있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그냥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좋겠다. 산에 올라가면 뭐 해 다시 내려올 건데 그러니 그냥 아래서 노는 것이 좋겠다. 난관이 있다는 것, 힘들 거라는 걸 알 때 우리는 그 길을 가기가 쉽지 않다. 핑계를 찾는다. 그 길을 가지 않기로 한다.


마음에도 길이 있다. 감정이 생기고 발전하고 증폭하다가 어느 순간 평온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면서 마음에도 길이 생긴다.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를 만드는 작업이다. 서로의 길을 연결하는 로터리가 생기고, 누가 먼저 갈지를 결정하는 신호등도 생긴다. 더 이상 만남이 없어 폐허가 된 길도 있다.


마음의 길은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한 통로가 된다. 나와 비슷해서 편한 길, 나와 너무 달라 조심스러운 길, 목적이나 수단이 걸린 위험한 길, 내가 무엇을 해도 다 받아주는 넓은 길, 길에 맞춰 조심해야 하는 좁은 길 등이 있다.


마음의 길을 내는 것과 길을 가는 건 나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좀 더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혼자 결정하고 가는 길이 가장 마음이 편한 길임을 알지만, 그 길만 갈 수도 없다. 나를 좋은 곳으로 대려다 주는 길을 걷고 싶다.


출입 금지, 언덕, 내리막, 일방통행, 속도제한 등은 길을 걷는 규칙이다. 길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생긴다. 내가 만든 것도 있고, 상대가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 이를 지키는 것은 관계에 매우 중요하다. 이 신호를 지켜야 안전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일을 잘하는 사람, 그 일이 나와 연결된 사람, 내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 마음이 읽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 너무 끌린다. 그러면 처음에 의심, 불신, 질투, 망상, 미움, 비판 등이 생기고 이를 걷어내면서 신뢰와 사랑이 싹튼다. 그리고 이를 키워간다. 행복하다.      


나에게 길은 이렇게 생기고 발전하고 있다. 먼저 길을 찾는다. 길을 찾다가 못 찾으면 길을 묻는다. 다양한 길이 있음을 알게 된 후 선택한다. 하지만 그 길은 이미 많은 사람이 선택한 길이라 내게는 지분을 내어 주지 않는다. 난 내게 맞는 길을 내기로 한다. 힘들고, 어렵지만 내 길을 간다. 내 길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모든 걸 감수한다. 내가 행복하기를 선택한다. 마음의 길도 그렇다.




길을 읽다

최정연


한때, 쇼핑은 나에게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특히, 옷을 고르는 일은 너무나 힘겨웠다. 그래서, 살찐 나의 몸에 주눅 든 내 마음에 위안을 주고, 지름신의 강림을 저지하여 진정시켜주는 동시에 살까 말까 아리송한 내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채고 강력하게 부추겨 줄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만, 쇼핑이 가능했다, 이른바,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그 병(病) 아닌 병을 나도 제법 심하게 겪느라, 겨우 티셔츠 한 장 사는 일도 색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는 내가 답답하고 싫어질 때도 있었다. 그 망설임은 어쩌면, 실패에 대한 아까움 또는 두려움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어려움과 답답함이 극한에 닿았을 때쯤, 나를 선택의 지옥에서 탈출하게 한 것은 바로 ‘기회비용’이라는 말이었다.


기회비용은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다른 기회의 최대가치”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생각해 보면 인생은 늘 선택의 순간으로 채워지는데, 결국 나의 선택은 다른 걸 경험할 기회를 포기하고 얻는 ‘선택의 비용’이기도 하다. 그 기회비용으로 티셔츠를 사는 몇만 원 정도는 실패한다 해도 과감히 써도 될 나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 점점 배포를 키웠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경험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다고 했는데, 옷 사는 일도 자꾸 도전하고 실패를 해 봐야 나에게 딱 떨어지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테고, 까짓것 실패하면 다음에 잘 사면될 것 아닌가. 그래서, 그 비용을 과감히 투자라고 생각해 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만약 이번 선택이 실패라면, 다음에 잘 선택하면 될 테니 말이다.


길 위에 직접 서 보아야 길도 잃어버릴 수 있다. 기회비용을 선택의 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가끔 길을 잃는 것은 절대 실패나 아까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은 일의 경중을 떠나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만, 길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나의 길을 읽어낼 수 있다. 그래서, 난 오늘도 작은 길, 큰길 과감히 잃어버리고 헤매 볼 예정이다. 어차피 안가 보면 그때는 미련이 괴롭힐 테니, 그까짓 기회비용쯤 아낌없이 내놓는다.




나의 길! 나름 매력 있는 길!

전하영


오늘 아버지와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에 다녀왔다. 아버지와 단 둘이 기차를 탄 과거 속 경험을 샅샅이 뒤져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니 단 한 번도 없었던 경험인 듯하다. 늘 농사일에 여행 한 번 제대로 해보신 적 없는 당신께서도 낯선 상황이셨던지 창밖을 보시며 너무나도 달라진 풍경에 무심히 흘려보낸 세월의 파편처럼 간간히 몇 마디 말씀을 하신다. 쏜살같이 달리는 철길 위에 뜨문뜨문 이어지는 두 남자의 대화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할 작은 조각처럼 흩어져 버리는 상황이 익숙하기도 하면서 낯설기도 하다.


길이란 그렇다. 길은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지만 결코 친절하지만은 않다. 내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이 길이 되며 내 발자국이 짙게 찍혀 있으면 익숙한 길이 되고 희미하거나 흔적이 없는 곳이면 낯선 길이 된다. 결국 길은 내가 의미를 부여할 때 그 길이 나의 길이 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길을 걸었고 그 길마다 저마다의 의미가 새겨져 있다. 지금은 잊혀진 의미도 수두룩하다. 걸었던 길조차 기억에 없기도 하다. 물론 문뜩 떠오른 잊혀진 과거의 그 길이 지금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우연적인 요소만을 기대하며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지탱하며 더 나아가게 해주는 힘을 갖고 있는 길은 무엇일까? 유형의 길과 무형의 길 하나씩 꼽아보자면, 유형의 길은 ‘본가에 가는 조용한 산길’이고, 무형의 길은 세상으로 나오면서 선택했고 지금도 그 길에 서있으며, 앞으로도 걸어갈 길 ‘평생학습의 길’이다.


휘황찬란, 시끌벅적한 도시에 파묻혀 살다가 샛길로 들어서면 본가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아직도 아무에게나 허가되지 않은 그 길은 산속 깊숙이 들어갈수록 포근함과 아늑함을 전해준다. 도시 옆에서 느끼는 자연의 향기와 더불어 고향의 향기가 온몸과 마음을 감싸게 되면 그 어떤 자연인도 부럽지 않다. 나의 정서와 감성의 원천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본가에 가는 산길이 주체적인 삶의 존재인 나를 만들어줬다면, 평생학습의 길은 사회적인 삶의 존재인 나를 만들어준 길이다. 처음 글로 접한 평생학습의 길은 8차선 탄탄대로인 줄 알았지만 막상 그 길에 서고 보니 완전 지뢰밭 길이었다. 그래도 지뢰를 피해다는 나름의 재미를 느끼다 보니 오솔길도 만나고 자전거 길도 만나고 때론 그루터기 쉼터도 만나게 되었다. 어느 순간 고속도로와 같은 길을 내달리다가 갑자가 꺾이는 좁은 도로를 만나 위험하기도 했고 힘겹게 산을 오르듯 기어 올라가는 길을 걷다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이들과 손을 맞잡고 힘내어 걷기도 했다. 지금은 그들과 웃으며 산책하듯 걷는 이 기분이 참 좋다.


이제는 어떤 길을 만나더라도 두렵지 않다. 오래 걷다 보니 평생학습의 길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은 단단한 믿음도 생겼다. 가끔 지치고 힘겨우면 본가에 달려가면 금세 회복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길은 나름 매력 있는 길이다.




길 위에서 길을 묻다!

김동희


‘길’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들의 ‘나의 길’을 떠올린다

그 길은 곧 자신의 꿈과도 연결되어져 ‘꿈길’이라는 제목으로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지.

나는 이번 주제어 ‘길’을 보이지 않는 ‘길’이 아닌,

내가 밟고 다니는 눈에 보이는 그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의 삶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은 어디일까?

생각해보니 안락한 집도 아니고 하루 종일 딱딱한 책상과 함께 해야 했던 학교도 아니고

바로 ‘길’인 것 같다.


나의 삶 속에 그 무수한 길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길에서 첫사랑도 만나고,

길에서 잊지 못할 이별도 하고,

길에서 주저앉아 울어보기도 하고,

길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려 보기도 하고,


지금은 그 길 위를 주로 자동차로 움직이며

길 위에 돈을 뿌리고 다닌다고 사람들이 말하지.

그리고 또 나는 길 위에서 피곤한 몸을 뉘이며 잘 자기까지 하지.


때로는 길을 잘못 접어들어 간 곳에서 새로운 맛집을 발견하기도 하고 더없이 아름다운 풍광을 안내받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최초의 ‘길’은 어릴 적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 때 한겨울에 눈 덮인 산길을 할머니랑 둘이서 걸었던 장면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길은

조금 전까지 나의 큰 아들과 동네 마실 나녀온 길!


마치

평생 나를 따라와 준 것 같은 그 길을 나는

나의 ‘길벗’이라 칭한다.


삶의 무게에 못 이겨 발을 동동 구르며 아파할 때조차 함께 해준 나의 ‘길벗’

그 길 위에서 나는 한 참을 서 있기를 즐겨한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 길이 진짜 나의 길인가?


그렇게 나는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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