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후회하지 마라!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캐롤 A. 터킹턴(Carol A. Turkington)의 글이다. 추억은 기억과 관련되어진다. 행복한 기억이 추억이 된다. ‘추억이란 후회 없는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건 추억, 나쁜 건 경험이라고 한 건 후회가 끼어들어 굳이 가름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절대로 후회하지 마라’고 한 거라 고집을 부려본다. 그래 후회하지 말자! (하하) 그럼 모든 것이 추억이 될 거니까.
경험은 내가 존재한 흔적이다. 나의 삶이며 인생이다. 나의 선택과 에너지가 거기에 있다. 결국은 지금의 나는 경험의 생산물이고, 앞으로도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나를 또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 했고,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나와 만나게 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추억은 진행형이다. 지금 내가 판단할 필요가 없다.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즐겨보자. 모든 경험이 추억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와 대단한 발견이다!)
살면서 후회가 없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 기억들이 많다.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좀 더 열심히 할걸. 오히려 생각해 보면 후회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후회가 인생의 다양한 경험이 되어주었고, 깊이 있는 인생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므로 후회는 알 수 없는 인생의 그림자처럼 늘 나와 함께 있다. 추억의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처럼 말이다.
“후회해도 좋다! 좋았던 나빴던 모두가 추억이 될 수 있다! 그래 후회하자! 더 많이 후회하자!” 후회가 열어줄 현재와 미래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이것이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을 믿자! 과거에 감사하고, 미래를 꿈꾸며, 현재에 설레는 삶을 살자! 나의 인생이 후회 없는 경험이 되어줄 것이다.
추억
박시현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추억'의 사전적 의미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뀐 세월 속에 나의 추억은 어떤 것이 남아있는가 시계태엽을 거꾸로 돌려보면 가장 먼저 멈추고 싶은 때는 이때이다.
학교 정문까지 가는 가파른 오르막길과 굉장히 넓은 운동장이 있는 국민학교 시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시에는 공하나, 운동장 그리고 몸뚱이만 있으면 재미있게 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시락은 벌써 빈 통이 되어버린 점심시간, 종소리가 울리면 학생들은 쏜살같이 운동장으로 뛰쳐나간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그 시간이 제일 신났던 순간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동시에 손 야구하고, 피구하고, 축구하면 운동장은 온통 흙먼지로 뒤덮인다. 지금도 나는 수 백 명의 어린 학생들이 뿌연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 먼지투성이인 옷을 터는 모습, 수도꼭지에 입 대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의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간다.
사람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시절로 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흔히 들한다. 나는 주저 없이 그 시절을 선택할 것이다.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고, 놀고 싶으면 놀고, 계산적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았던 내가 때 묻지 않고 가장 순수했던 시기였고 앞으로 그렇게 살고 싶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추억'이라는 단어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를 일깨워준다.
오늘도 추억이 하나 늘었습니다.
권창숙
윤동주의 서시
너의 어깨에 기대고 싶을 때
너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놓고 울어보고 싶을 때
너와 익숙한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해 창가에 앉았을 때
그 창가에 문득 햇살이 눈부실 때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뒤늦게 너의 편지에 번져 있는 눈물을 보았을 때
눈물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어이 서울을 떠났을 때
새들이 톡톡 안개를 걷어내고 바다를 보여줄 때
장항에서 기차를 타고
가난한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갈참나무 한 그루가 기차처럼 흔들린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인가
<출처: 정호승 시선집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추억은 과거의 기억이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그것은 단지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슬프고, 아릴지라도 그 기억이 나에게 의미를 가진다면 추억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같은 상황 속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는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기억으로조차 남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난 의미 부여를 곧잘 한다. 내게 의미 부여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곤 하지만 내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상황이 나에게 부딪혀 왔을 때, 굉장히 인상적인 일이 있었거나, 또는 마음에 불편함이 남을 때,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할 때 부정적 의미보다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이때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면 훨씬 그 일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더 나은 행동을 선택하는 것과 편안한 마음으로 용기를 내는 게 가능하다.
정호승 시인은 아마도 윤동주의 서시를 읽을 때마다, 접할 때마다 ‘너’를 추억하게 될 것이다. 삶이란,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를 고뇌하도록 한 ‘너’는 그에게 의미 있는 존재일 테니 말이다.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떠올려본다.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한, 함께 한, 나의 존재 그 자체에 감사해 한, 나에게 무한한 용기를 준, 늘 지지해 준 ‘너’를 떠올려본다.
기억이 아닌 추억하는 삶
전하영
기억하는 것은 과거의 사실이고 추억하는 것은 과거의 느낌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지만 추억은 더욱 풍성해진다. 가물해지는 기억 저편 넘어 느낌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면서 추억은 더욱 또렷한 자욱으로 가슴속에 스며든다.
나의 어릴 적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의 기억이 다소 뚜렷하게 떠오른다. 더 어릴 적 기억들은 왠지 부모님, 형누나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기억으로 둔갑해 남아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최초의 추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뿌연 연기와 같은 기억들을 파헤쳐 보다 보면 기분 좋은 유년시절의 느낌이 손에 잡힐 듯 가슴을 콩닥거리게 한다.
수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문득 낡은 앨범을 넘기듯 기억 속 누군가가 떠올려지면 그 사람과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에 잘 없지만 그 사람의 느낌은 상대적으로 잘 느껴진다. 좋은 느낌일 때도 있고 다소 안 좋은 느낌일 때도 있다. 추억을 쫓아가다 보면 새로운 기억이 나기도 하지만, 추억 그대로가 더 좋을 때가 많다.
이처럼 추억은 기분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힘들었던 경험조차 웃음하나의 추억이 되고 있으니깐.
상대적으로 또렷하게 남아 있는 최근의 경험들도 어느 순간 잊혀져 가는 기억이 되겠지만 기억을 추억으로 변환하면 이 또한 기분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자기 합리화의 모순이라 할지라도 정신건강에는 참 좋기에 아픈 기억도 추억으로 전환하는 두뇌와 가슴의 싸움은 계속될 듯하다.
이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점점 적어지고 있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경험이 이후의 나를 만들겠지만, 기억보다는 추억으로 나를 세우고 싶다.
10년 후 나는 오늘의 나의 모습과 상황, 환경, 주변 모든 것들에 대해 기분 좋은 경험은 배가시키고 기분 좋지 않은 경험은 반감시키는 추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오늘의 이 글이 하나의 감초와 같은 혹은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하겠지.
추억의 장소에서 만나는 나의 정서
김동희
추억이란
시간이 지나간 흔적인 것 같다.
시간을 거슬러가는 타임머신 같다.
추억은 가만히 앉아서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서서히 떠올릴 때가 있고,
어떤 냄새나 향기에 의해 추억 속으로 훅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때는
사진 한 장으로 몇십 년을 거슬러 추억의 현장에 도달하기도 한다.
때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 보기도 하면서
그때 그 시절 속의 나를 만나곤 한다.
최근에 나는 예전에 1년 혹은 2년간 수업을 나가던 곳을 지나칠 일이 있어 갑자기 예전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간 듯 지난 추억 속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10여 년 전에 3년간 열심히 다녔던 곳 근처에 수업이 있어서 왔는데....
그 높고 많았던 산들이 다 없어지고
온통 빌딩숲이 되어버렸다.
한 마을이 생긴 게 아니라
한 도시가 생겨버렸다.
여기 학교 건물에서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그대로인데
주변이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네.
주변은 변했지만 많은 것들이 그대로인 바다!
수업을 마치고 그 바다로 곧장 달려갔다.
울산 신명 바닷가!
왜 이렇게 울컥한 것인지...?
이 바다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출렁거리고 있는데,
나에게 보이는 이 바다는
십여 년 전 나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나있다.
이제 나는
제법 괜찮아졌다고
그 시절 힘겨웠던 나에게
토닥토닥 안부를 전하고
돌아서는 그 길에
포말이 눈물인 듯 부서진다.
추억이 같은 이유로
최정연
시간이 지나도 늘 머릿속을 맴도는 음률과 가사는 그저 ‘좋다’는 짧은 감탄사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머리가 멍해지는 요즘 말로 ‘띵곡’으로 불리는 명곡들이 그러하다. 물론 좋은 음악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나에게 최고의 띵곡들은 10대와 20대 시절의 내 마음을 훔쳐 간 노래다. 그건 아마도 그 시기가 가장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세상을 만나던 때이기 때문이리라. 친구들과 함께한 캠프파이어에는 ‘모닥불 피워놓고~’가 단골로 등장했고 사랑에 쓰라린 마음은 가슴 절절한 사랑과 이별 노래를 핑계로 울었다. 투쟁가를 떼창 하며 대동단결했고 부산 갈매기를 외치며 응원하기도 했으니, 그 순간을 함께한 누군가는 같은 노래로 그 장면을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 떠드는 것은, 추억을 함께 공감할 누군가를 기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추억은 여러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데, 삶을 둘러싼 수많은 일들이 때로는 시간으로 때로는 공간으로 기억된다. 어떤 때는 사람들과의 사건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그 순간 코끝을 스친 향기나 자연스레 떠오른 이미지로 연결되어 저장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지만 알고 보면 행복의 이면에는 늘 그렇듯 아픔도 존재한다.
“추억이 같아 헤어져야만 해도 이별의 아픔 우린 같을 텐데,
추억이 같아 행복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우린 이별할 수 있어.
추억이 같은 이유로~♬”
이 가사는 나의 명곡 리스트에 있는 이승철 님의 ‘추억이 같은 이별’이라는 곡의 마지막 부분이다. 분명 추억을 떠올리면 행복한 글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는데, 자연스레 떠오른 노랫말이 의외로 아프다. 이 곡뿐 아니라 추억이 등장하는 노래는 의외로 이별이 짝처럼 따라다니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마 추억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때는 행복이 계속 이어질 때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아쉬움이 더할 때이기 때문일 테지만 마음은 시리다. 할 수만 있다면 현재의 쓸쓸함으로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기보다는, 나와는 다른 경험이지만 같은 노래로 추억을 떠올리는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다. 과연, 추억이 같은 이유로 나는 또 우리는 어떤 순간을 맞이하게 될까.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