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作心)3일] 13편. '설렘'

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by 삶과앎

설렘

박시현


설렘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소풍 전날,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은 소풍 가서 먹을 김밥 재료를 준비하고, 음료수랑 간식을 챙기는 순간부터 설레는 마음은 아침에 일어나기 전까지 꿈속에서도 이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풍을 못 가는 불행은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 쉰이 넘어서 간 첫 해외여행 때도, 코로나 때문에 3년간 미뤄왔던 싱가포르 여행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겠지만 국민학교 시절 소풍의 설렘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40년이 넘는 삶의 자국들이 어린 시절 나와 달리, 세상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경험도 많이 쌓여 그때 가슴 뛰게 했던 설렘의 강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 말로만 듣던 '환갑'이라는 나이가 눈앞에 다가왔다. 앞으로 어떤 순간, 어떤 모습으로 가슴을 뛰게 할 일이 또 일어날지 기대가 된다. 설렘을 위한 거짓된 설렘을 탐하기보다는 오늘 하루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고 다가오는 삶을 맞이하고 버텨나간다면 어린 시절 가슴 뛰게 하는 설렘은 아닐지라도 작지만 소중한 설렘들은 나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설렘이 주는 설레는 마음

전하영


‘설렘’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설렘을 준다. 말할 때도 들을 때도, 글로 쓸 때에도 마음은 설레고 있다. 이처럼 마음을 통통 튀게 하는 단어가 그 어디에 또 있겠는가? 심장박동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가슴이 꽉 찬 듯한 느낌과 함께 머리가 약간 핑~ 도는 듯하고 눈빛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 진정 살아있는 느낌을 온몸과 마음으로 받은 듯하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그러하기에 설렘은 참 설레게 하는 단어다.


살면서 셀 수 없을 만큼 참 많은 순간들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 많은 설렘 대부분은 처음 뭔가를 할 때이며, 뭔가를 하고 있는 순간보다 뭔가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순간들이 설렘이 고조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첫 소풍과 첫 수학여행, 중학생 시절 첫 짝사랑, 대학생 때의 첫 연애, 첫 직장 첫 출근 등

설렘은 나이와 상관없다. 어린 시절보다 더 많고 더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어 새로운 것을 접하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비슷하다 하여 같은 것은 아니니 지금도 여행은 여전히 설렘을 준다. 가 본 곳을 또 간다 해도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다르기에 설렘도 다르다.

지난 3월 초에 ‘국제적으로 한술 더 떠 4탄 – 싱가포르의 길’을 다녀왔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은 5개월 전인 지난해 10월이다. 10월 초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후 장장 5개월을 기다리는 긴 시간이 설렘의 시간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나라이기에 무엇을 볼 것인지, 어디에 묵을 것인지, 필요한 예약은 언제 할 것인지, 틈날 때마다 인터넷을 통해 싱가포르 여행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구글지도에 가고 싶은 곳을 저장하며, 숙소를 검색해 최적의 장소를 찾는 모든 순간이 설렘의 순간이었고 출국 당일 공항에서 일행들을 만났을 때 설렘이 최고조에 달했다.


5개월 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상황도 있었지만, 싱가포르 여행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이 또한 설렘의 힘이다.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


지금은 또 다른 여행,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또 다른 설렘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면 설렘의 마음을 많이 갖기를 바란다!




설렘은 만남이다.

한성근


설렘은 기분과 관련되어진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때 설렌다. 설렘이란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그들도 날 좋아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들을 만나는 순간이 설렌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매일 만날 수 없어서 가끔 만나는 것이 더 설렌다. 물론 매일 만나는 행복한 사람도 있다. (하하하) 정기적인 만남을 약속한 관계 그런데 그 만남이 기대된다면 설렘이 있는 모임임이 틀림없다.


이번 주 대전으로 이사하고 아무 부담 없이 부산엘 갔다. 대전에서 부산을 무궁화호를 타고 3시간 30분 걸려 갔다. 봄날의 정취가 사람과 풍경에서 펼쳐진다. 아마도 이번 주가 봄꽃의 절정이 될 모양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설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설레고 있어서이겠지 생각이 든다. 부산에 간 이유는 딩굴딩굴공작소 공작원들의 봄 소풍(내가 지어낸 행사명임) 때문이다. 전하영 대표의 부모님께서 살고 계신 장산 중턱쯤 어딘가다. 기차 안에서는 풍경에 눈을 빼앗겼지만, 공작원을 만나는 순간 풍경은 없어진다. 사람만 보인다. 입이 열리고 나도 모르는 방언이 쏟아진다. 만나기 위해 뭘 준비하거나 한 것도 없다.


신해운대 역에서 만난 우리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는다. 꽃보다 더 화려하게(나만의 가분일 수도 하하) 서로 인사하고, 뭐 특별한 건 없지만 그냥 안부를 묻고 대답하고 웃는 사이 전대표의 부모님 집에 도착했다. 글을 쓰는 지금 전대표의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어쩌면 저렇게 편안해 보이실까? 손을 잡아드리고 싶지만, 오늘은 참기로 한다. 전대표의 얼굴은 딱 부모님이다. 준비해 온 점심거리 김밥, 오뎅, 순대 또 뭐가 있었지? 잘 모르겠다. 음식보다 수다를 떠느라 얼만큼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것이 없다. (나만 먹은 건 아니라는 걸 꼭 밝혀둔다.^^) 머위를 뜯고, 쑥을 캐고, 쪽파를 다듬었다. 엄청난 양의 파임에도 웃고 즐기는 사이 모든 걸 해냈다. 파전과 막걸리사이다를 먹으며 또 수다를 떤다. 뭐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데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은 모양이다. 물론 모두 떠드는 건 아니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 가끔 끼어든 사람, 남의 말 자르고 들어오는 사람, 그거에 삐지는 사람(다분히 주관적임)이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열심히 말했는데 기억나는 게 없다. 아마도 필름이 끊긴 건가? 과음했나 보다. (그날 막걸리 20㎖에 사이다 타서 마심 하하하)

고삐 풀린 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게 떠는 건, 내 앞에 있는 이들이 그만큼 좋다는 거다.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고, 무슨 말이든 들을 준비가 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들이 있는 한 설레는 만남이 계속된다. 나의 설렘은 만남이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 오늘도 제주도로 한해살이 떠나는 인생 친구가 온다. 오늘 밤이 또 설레는 이유는 만나기 때문이다. 뭘 할까? 고민이 없다. 어제는 장산에서 가지고 온 파로 김치를 담그고, 머위를 무치고, 쑥으로 국을 끓였다. 이 음식을 먹이며 그대들의 이야기를 하겠지? 기대하시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설렌다. 남은 삶을 계속 설레며 살겠지….




내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권창숙


‘심쿵’, ‘심쿵하다’라는 말은 설렘과 비슷하게 쓰인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들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설렘, 심쿵.


봄이 오면 설렌다.

봄의 기운처럼 봄에는 새롭게 펼쳐지는 것들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늘 3월이 되면 입학을 하거나 학년이 바뀐다.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설렘과 두려움이 혼재된다. 나에게 이전의 직장생활도 그러했다. 일반 회사에는 1월에 시무식을 한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낯설었다. 학교는 2월에 종업식을 하고 3월에 개학식을 하면서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기에 교사 생활을 하던 나의 삶의 시계는 그렇게 맞춰져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시계는 여전히 ‘3월=시작’이라는 기준에 맞추어 움직였다.


또한 새로운 만남은 나를 설레게 한다.

누군가를 만나서 좋아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지면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그 사람과 만나는 약속이라도 하면 약속 전날에도 가슴 설레이고, 약속 당일이면 거울 앞에서 많지도 않은 옷들을 입어보며 시간을 보낸다. 멀리 약속 장소가 보이기 시작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약속 장소에서 상대를 눈앞에 마주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에도 심쿵, 심장병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가슴이 뛰어서 혹시라도 가슴 뛰는 소리가 상대에게 들킬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한 지금 하루하루의 생활은 설렘과 걱정이 함께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새로운 나를 매일 발견한다. 요즈음 나는 새로운 나와 만나는 것에 설렌다.


밤이 낮보다 긴 겨울을 지나 점점 낮이 길어지는 2월에 이어 3월 봄날의 밝은 햇살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하여 설렌다. 꼭 좋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 것 같은 느낌. 눈부신 햇살과 살랑이는 그러나 뜨겁지 않고 약간은 차가우면서 기분 좋은 3월의 바람은 나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면서 나를 설레게 한다.


두 눈은 힘주어 앞을 바라보고 얼굴엔 미소를 띄우고 가슴엔 기대감을 가지고 걸어가 본다.

혹시 모르니까 말이다.

심쿵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렘 주의보

최정연


4월이면 나는 소풍을 떠난다. 산들 부는 바람에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며 떨어지고 장마철은 아니지만 잔잔한 비가 잦게 내리기 시작할 때 즈음이면, 제주로 가는 항공권을 예매하고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반드시 이맘때라야 한다. 일하러 가는 출장이어도 제주행은 늘 신이 나고 좋지만 매년 4월에 떠나는 소풍만큼은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다. 이 3일간의 소풍을 ‘고사리 피크닉’이라 부르는데, 지금은 수년째 나에게 설렘을 주고 있다.


사실, 이 일을 좋아하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깝다. 아마도 6년 전쯤인 듯한데, 내가 회원으로 속해있는 협회가 제주에서 연수를 열었고 나는 ‘고공비행’이라는 이름에 마음이 끌려 참가했다가 우연히 오른 오름에서 나도 모르고 살던 즐거움을 찾았다. 공식적인 일정 이후에 바로 돌아오기 아쉬워 비슷한 마음으로 남은 일행들과 함께 비공식 일정을 만들어 쫓아다녔다. 비행기 타기 전 마지막 코스로 간 곳이 유명한 오름이었는데 사람들은 오름보다 풀들 사이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고사리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들과 달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다른 줄 알았다. 언젠가부터 봄만 되면 ‘지금쯤 제주도에 가면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렸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는 엄마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깟 고사리 매일 먹는 반찬도 아니고 시장이든 마트든 얼마든지 구해서 먹을 수 있는데, 무려 비행기를 타고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 천지인 제주에 가서 산을 헤매고 오겠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다. 이건 집 근처에 지천으로 널린 쑥을 캐러 가겠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래서, 그 아쉬운 고공비행의 마지막 날에 너도나도 풀숲을 헤치며 고사리 삼매경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서도 나는 꿋꿋이 정상을 향해 직진본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 철벽은 내려오는 길 일행이 구경이나 해보라며 나에게 건네준 몇 가닥의 고사리에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알던 고사리는 죽어서 끓는 물에 삶아지고 심지어 말라비틀어졌다 다시 환생한 좀비 같은 나물이었는데 너무나 달랐다. 촉촉함을 머금은 줄기 끝에 아기 손같이 귀여운 형상의 풀들을 한 손에 모아 놓으니 들꽃으로 만든 한 다발의 부케처럼 이뻤다. 남들 놀 때는 고고히 산만 오르다 뒤늦게 알아챈 고사리 꺾는 재미에 빠진 나 때문에 하산길 내내 동료들은 틈만 나면 옆길로 자꾸만 사라지는 나를 찾아다녀야만 했다.

4월의 길은 즐겁다. 코끝에 묻어오는 바람에서 달큼한 향이 느껴지고 가로등 불빛에 벚꽃은 더 화사하게 보인다. 밤마실 나가기 딱 좋은 때이다. 거창한 약속 없이도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동네 친구를 만나 편의점 간이테이블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면 이 봄이 그저 좋다. 그리고, 벚꽃이 아쉬운 작별을 고할 때쯤 나에게는 새로운 설렘 주의보가 울린다. 내가 모르고 있던 어떤 셀렘이 또 언제 주의보를 내릴지 모르니 기대해 볼 참이다.



딩굴딩굴공작소(DDF; Dinggul Dinggul Factory)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평생학습공동체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의 공유공간이자. 일상을 작당하는 실천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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