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3일, 마음에 담아 마음을 담는 DDF 프로젝트 작심(作心)3일
전하영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다. 학창 시절 지리 시간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수십 년 간 체감해 몸과 마음이 계절의 변화를 쉽게 감지한다. 나이가 들수록 계절의 변화에 따라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은 것도 하나의 아픈 증표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계절이 변할 때마다 저마다의 먹거리, 놀거리 등을 찾아다닌다. 그 계절에 딱 맞는 혹은 그 계절에만 등장하는 가요도 있는 것 보니 계절의 느낌은 새삼 대단해 보인다. 이 모든 게 계절이 뚜렷하기에 누리는 호사일 수도 있다. 이런 우리나라에 태어난 걸 감사해야 하는 건가. 하하하.
계절마다 나름의 느낌을 갖고 있다. 그중 봄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강력한 느낌을 갖고 있다. 해가 바뀌는 시점인 1월은 한겨울이다. 그런데도 1월보다 3월에 이르러야 왠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기분이 든다. 학창 시절에는 새 학기가 시작되어 그렇다 할 수 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런 느낌을 갖는 것은 이제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3월이 본격적인 한 해의 시작과 같다. 학창 시절 새 학년이 시작될 때 꼭 등장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시작 “만물이 소생하는 ~”이 뇌리에 꽉! 박혀 있어서 그런가.
24절기 입춘은 봄이 들어서는 날이지만 2월 초순이기에 겨울 속 봄의 기다림과 같은 날이다. 주로 2월 중순인 경우가 많은 설날이 지나면서 서서히 날이 풀리기 시작하다가 2월 하순에는 날씨의 변덕이 심해진다. 이때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며 봄을 재촉한다. 그러면 우리들 마음에도 살랑살랑 봄바람이 일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다만, 이를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니 조심은 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나의 3월은 새로운 봄바람이 일고 있다.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긴 ‘국제적으로 한술 더 떠’가 3월에 있기 때문이다. 봄에 불어오는 따사로운 바람은 몸을 데우고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마음의 봄바람이 일어 이미 둥실둥실 떠다니며 몸을 재촉한다. 조만간 몸도 부웅~ 떠서 봄바람을 타게 되면 한 해를 뜨겁게 데울 힘을 충전하고 올 것이다.
봄바람은 그런 바람이며, 그런 바람을 담고 있다.
한성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생명력을 과시하는 생동감이라고 생각된다.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작년 말부터 화제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겨울이다. 이런 상대적인 계절의 이야기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모두에게 따뜻한, 누구나 생명력을 과시하는, 각자의 생동감이 넘치는 봄을 기대한다.
봄은 늘 새 학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새로운 배움이 기다렸고, 새로운 친구들이 기대되는 시점이었다. 요즘도 봄이 되면 새로운 학습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새로운 이야기로 만남을 준비했는데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기대가 된다.
봄은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여기서 점점 길어진다는 건 중요하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적응할 시간을 준다는 의미다. 모든 일들이 갑작스럽게 변하는 건 충격을 동반한다. 계절은 이렇게 따뜻한 배려가 있다.
봄은 화려하다. 겨울이라는 계절의 황량함 때문에 봄은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의 시각을 자극한다. 산과 들의 색을 바라보고 사람들도 입는 옷의 색을 더 밝은 색으로 바꾼다. 계절의 색을 보고 사람이 바뀐다고 ‘봄’이란 계절의 이름이 붙은 건 아닐까?
내 마음의 봄은 생각과 행동이 좀 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계절이다. 세상을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불어넣는 계절이다.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함께하는 배려를 배우고, 어울려 화려하라는 배움과 깨달음의 계절이다. 올해의 봄을 잘 맞이해 보고 싶다.
권창숙
봄이 오나 싶어 겨울옷을 정리해서 옷장 속으로 다 넣었습니다. 이상 날씨인가 싶을 정도로 따뜻한 날이 지속되고 살랑이는 바람도 찬 기운이 없길래 방심했나 봅니다. 어쩌면 겨울옷들이 무겁게 걸려있는 옷장을 보면서 정리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겁고, 긴 옷들을 정리하니 옷장이 깔끔해지고 제 기분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아직은 2월인가 봅니다. 마지막 추위가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킵니다. 따뜻하게 몇 겹을 껴입고 나가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오돌오돌 떨었더니, 결국 몸이 파업 선언을 합니다. 온몸이 굳더니 결국 위 통증에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옷장을 정리하고 난 후, 꽃가루 알레르기로 콧물과 재채기에 시달리면서도 봄이 오는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다시 봄이다.’
삶도 그런 것 같네요. 여기가 끝인가 싶었는데 또 바닥이 있기도 하고, 모든 문이 닫힌 것 같아 망연자실하게 있으면 또 다른 문이 열리기도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밀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때 나를 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는 너무나도 벅찬 일들에 머리가 새하얘지고 발을 동동거려도 그 나름의 배움을 얻게 됩니다.
봄이 오는 기운은 늘 나를 다시 서게 합니다. 희망을 품게 합니다. 어둡고, 춥고, 희뿌연 날씨의 겨울, 그 뒤의 따뜻한 봄바람이 조금씩 일렁이며 꽃이 피고, 따뜻한, 연두색의 새잎이 돋아나는 봄은 새로운 꿈을 꾸게 합니다. 짙은 초록의 여름보다 옅은 녹색, 연두색이 가득한 산과 풍경이 있는 봄을 좋아하는 것도 시작, 출발의 기운을 느끼게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출발을 알리는 바람, 봄바람이 부네요. 늘 오늘은 처음 살아보는 날이니까요. 플레이리스트 중의 한 곡. 김동률의 ‘출발’을 들으며 오늘 하루도 시작해 보렵니다.
최정연
‘불어오고, 휘몰아치고, 때로는 잔잔하다.’ 바람에 주로 따라붙는 말들인데 그 느낌은 천양지차다. 바람이 불어올 때는 공기보다 가볍게 우리의 곁을 맴돌고 휘몰아칠 때면 세상을 뒤집을 만큼 거세기도 하다. 바람의 위력에 겁이 나서 피하고 싶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윤슬만큼이나 고요하게 반짝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바람이 봄과 만나면 수식어가 달라진다.
대체로 봄과 관련한 노래에 등장하는 바람에는 우리를 설레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라일락꽃 향기를 전해주는 바람은 내 마음을 살랑 흔들어 놓고(이문세, 봄바람, 2015), 사르르 치맛자락처럼 휘날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눈송이 같은 벚꽃을 흩날리게 한다(버스커 버스커, <벚꽃엔딩>, 2012). 마치 부드러운 깃털로 내 심장을 간지럽히는 느낌이랄까. 단순히 기압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지는 공기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더해져 살랑이고 휘날리며 흩날리고 싶은 마음으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가만히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해도 좋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바람을 쐬러 간다. 따듯한 햇살이 더해지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 천천히 거닐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내가 그 속에 스며들어 바람이 되는 느낌이다.
어제는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김찬호, 2024)> 의 출간을 기념하는 조촐한 자리에서 평생교육의 인연으로 만난 좋으신 분들과 꽤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목 속 베이비부머이자 저자이신 김찬호 교수님의 글과 이야기, 함께한 여러 선생님의 이야기가 몽글몽글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책을 읽으며, 나이 듦에 대해 ‘나이를 먹다’와 ‘나이가 들다’에서 내가 긁적인 메모는 뜻밖에도 (봄) 바람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람이 주어이지만, 나이가 드는 것은 다르다. 단풍에는 고운 색의 물이 들고 사람도 나이가 든다. 물들기 위해서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숙성됨이 필수다. 나뭇잎의 생명이 상실되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단풍이 든다고 말하듯이 인간의 나이 듦도 그런 풍경과 같지 않을까라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봄바람이 든다’를 떠올렸다. 이제껏 바람은 내가 주체가 되어 느끼는 것인지 알았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봄에 설레는 것이 아니었다. 봄바람이 들어 나를 살랑이고 흩날리게 한 것은 아닐까. 봄바람이 들었으니 그 흐름에 나를 맡기고 천천히 느끼고 살아볼 심산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등장할 또 다른 바람에 나는 기꺼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