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아니, 그럴 일은 없어.
괴물은 누구인가. '괴물'이란 단어는 단순히 사회적으로 낙인 찍힌 존재나 악행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죄책감, 두려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적대감을 의미한다. 이 ‘괴물’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에 숨어 있는 본성이다. 주인공들이 고통 속에서 ‘괴물’을 마주할 때, 그들은 타인의 악행을 문제 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불완전함을 직시하게 된다. 인간은 한편으로 자신이 상처받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잠재적 존재임을 끊임없이 마주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바로 ‘괴물’이라는 형상으로 구체화된다.
3개의 렌즈, 1개의 진실
잔잔한 물결처럼 시작해 깊은 심연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이야기다. 화면 속에서 불거지는 긴장감은 누군가의 숨결처럼 조용히 스며들다, 곧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영화가 던지는 수수께끼이자, 우리의 눈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반증하는 거울이 된다.
영화는 사오리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싱글맘으로,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미나토와 단둘이 살아간다. 어느 날, 미나토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느낀 사오리는 담임 교사인 호리를 찾아간다. 아들이 학교에서 겪는 일이 단순히 또래 간의 다툼이 아니라는 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오리의 분노는 마치 차오르는 물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커져만 간다. 학교의 태도는 사오리의 의심과 불안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호리에 대한 소문은 그녀를 더욱 확신으로 이끈다. 미나토가 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닐까? 어머니의 사랑은 본능적이고 절박하지만, 그 사랑이 의심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를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는 '괴물'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호리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두 번째 장은 마치 거울 반대편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는 학교 내에서 ‘좋지 않은 소문’의 중심에 있다. 과거의 실수, 불필요한 오해, 그리고 그의 서툰 인간관계는 교직 내에서 그를 점점 고립시킨다. 동료 교사들조차 그를 꺼려하며, 학부모들은 그를 경계한다. 그러나 호리는 단순히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열정을 품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서툴어 종종 오해를 낳는다. 미나토와 요리의 관계를 보호하려는 그의 노력은 오히려 두 아이의 비밀을 드러낼 위험을 초래한다. 이로 인해 호리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은지에 대해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는다.
마지막 장은 미나토와 요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완성한다. 이들은 학교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자신들만의 비밀과 우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미나토는 요리가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친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한편 요리는 그런 미나토를 이해하면서도,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 묵묵히 싸워 간다. 아이들의 시점은 모든 사건의 진실을 밝혀 주는 동시에, 이 사회가 얼마나 쉽게 그들의 목소리를 지워 버리는지를 드러낸다. 관객은 마침내 알게 된다. 미나토와 요리, 두 아이는 어른들의 오해와 욕망 속에서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를. 요리의 아버지 역시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분노만을 내세우며,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와 충돌한다. 여기서 영화는 우리가 아이들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듣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우리의 잣대에 그들을 끼워 맞추는지를 묻는다.
영화 속 '괴물'은 단순히 하나의 인물을 지칭하지 않는다. 사오리, 호리, 그리고 학교 시스템을 대표하는 교장과 교감까지, 이들 모두는 사회적 구조와 개인적 상처 속에서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낙인 찍는다. (하지만 요리의 아버지는 괴물임) 특히 교장은 최근의 사고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학교를 운영한다. 그녀의 판단은 종종 감정적이고 모호하며, 이는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갈등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런 와중에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이들의 침묵도 ‘괴물’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즉, 괴물이란 개인의 악행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군중의 무관심, 오해, 그리고 성급한 판단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른지 묻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거울을 들이밀며 묻는다. 당신은 괴물이 아닐 자신이 있는가? 영화는 특정 인물의 행동을 단죄하지 않으면서도,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불완전한 정보를 근거로 판단하고, 상대를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가? SNS라는 공간에서 분노는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괴물로 만들어지는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질문은 계속된다. 괴물은 과연 누굴까? 그것은 미나토를 괴롭히던 아이들인가, 그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어른들인가, 아니면 그 모든 갈등의 주변에서 방관하고 있던 우리 자신인가?
우리는 쉽게 판단하고, 쉽게 낙인을 찍으며, 쉽게 잊는다. 괴물은 누군가의 의도가 아닌, 군중의 공포와 오해 속에서 만들어진다. 관객은 결국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괴물이라 믿는 존재는 정말 괴물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