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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by myn

포스터만 봤을 때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영화관에 들어갔고, 시작 직전에 친구가 게이 이야기라는 걸 알려 줬다. 첫 장면이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웨딩드레스 차림의 김고은이 "왔어 자기?"라니, 남주가 게이였다가 결혼한 거야 뭐야 싶었다. 아무런 정보도, 기대도 없이 본 영화였지만 근래 영화관에서 본 것들 중에 제일 깊은 여운을 느꼈다. 혼자 다시 영화관을 찾았고, 차근히 곱씹어 본 후에야 비로소 영화를 풀어 낼 수 있었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예쁘장한 얼굴,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담타를 가지는 자유분방한 미친년 구재희.

그에 반해 있는지 없는지 학교에서는 조용히 지내다가 밤마다 이태원 클럽 거리를 돌아다니는 게이 장흥수.


둘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과 교수와 게이 클럽 앞에서 키스하다가 동기를 만났다? 상상만 해도… 그냥 모든 문장성분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어찌저찌 친해진 두 사람은 매일같이 클럽을 다니고 한 번뿐인 청춘을 정말 제대로 즐긴다. 여느 때와 같이 클럽에서 놀고 해장술을 하며 흥수가 재희에게 묻는다. 넌 내가 게이여도 아무렇지 않느냐고. 재희는 답한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그게 뭐 대수냐는 듯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답한다.


흥수는 자신의 존재, 그의 ‘다름’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질지를 끊임없이 걱정한다.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도 시선이 두려워 숨고, 밤마다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기도하는 엄마를 모른 체한다. 흥수의 걱정은 당연했고, 공감됐다. 우리 사회는 종종 ‘다름’을 불편하게 여긴다. 그 ‘다름’은 성적 지향, 인종, 종교, 나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본질은 한 가지다. ‘다른 것’을 향한 편견과 거부감이다. 흔히들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입에 올리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얼마나 큰 저항을 느끼는지 돌아본 적 있는가. 존중이라는 워딩 자체가 이미 자신들과는 거리를 두고 시작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나와 다르면 열등하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게 열등감인 줄도 모르고.

사회가 규정한 일반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두 사람을 실제로 본다면, 나는 과연 그들을 편견 없이 대할 수 있을까. 이 장면이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마음이 쿡쿡 쑤셨다. 사실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신경 쓰려니까 내가 나인 채로 존재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서울에 씨발 집값이 얼만데
친구끼리 같이 살 수 있잖아요.

퀴어, 낙태, 데이트 폭력 등 미디어에서 문제시되는 모든 요소가 들어갔지만 결국은 스무 살부터 서른셋, 서로의 일순위가 된 아름다운 청춘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


어떤 우정은 사랑이고, 어떤 사랑은 우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만큼 깊은 우정을 꿈꾸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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