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끝, 또 다른 시작 앞에서

여행 아홉째 날

by 첨예하니

From Mom's Heart

딸아이와 함께한 긴 여행을 마치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JFK 공항으로 향하는 길, 짐을 정리하며 마음도 차분히 정돈해 본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땐 모든 것이 낯설었는데, 이젠 익숙하고 심지어 친근하게 느껴진다. 공항도, 거리도, 도시의 공기마저도.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을 기다리며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커피 잔의 높이가 살짝 낮아져 있었다.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딸아이의 표정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어느새 이렇게 자라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은 나이가 되었구나. 여행 내내 세상에 눈을 반짝이며, 때로는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다정히 말을 건네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아이를 지켜보는 마음은 늘 놀랍고도 뭉클하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금세 적응하고, 때로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말로 분위기를 다독이던 모습에서, 이 아이는 참 단단하게 자라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보고 감탄하고, 질문하고, 또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며, 이 아이 안에 깃든 가능성의 결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다시금 느꼈다. 그렇게 곧 중학생이 되는구나, 감동이 밀려왔다.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이상한 기분. 기쁘면서도 조금은 아린 감정이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아이는 사춘기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하다. 감정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말투도 가끔은 낯설다. 하지만 그 또한 성장의 한 방식이리라. 내 안에는 분명한 믿음이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이 아이는 자기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배우고, 결국은 자기 길을 단단히 걸어갈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어서, 흔들릴 때에도 결국은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있던 중, 탑승 시간이 되어가는데도 아무 안내가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점점 늦어지더니, 결국 비행기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러시아 캄차카 반도의 클류체프스코이 화산이 분화해 항로가 변경되었고, 우리는 작은 비행기로 옮겨 탑승해야 했다. 심지어 수하물은 따로 화물기에 실려 이틀 후에나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금껏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것마저도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끝날 듯 끝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새로운 기억을 안겨주는 이번 여행은 정말 특별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땅에 발을 딛던 그 순간. 주중이었고, 게다가 비행기까지 크게 연착된 상황이라 남편이 마중 나오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였다. 그런데 도착장 문을 나서자,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드는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놀라고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피곤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구나. 언제나 어디에 있든, 결국 함께 있어주는 사람. 말없이 큰 울림을 주는 그의 존재가, 이 긴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Through Daughter's Eyes

이 긴 여행의 막을 내리며 JFK 공항으로 가는 길은 어딘가 아쉽고 허전하게 느껴졌다. 사실 전날까지만 해도 이 여행이 끝난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났는데, 공항으로 가는 동안에야 느껴졌다. 최대한 차 밖을 보면서 나는 뉴욕과 인사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처음 왔을 때처럼 정신이 없었다. 면세점들도 구경하고, 카페에 들러 배를 채우려고 했을 때 나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음식이 보였다. 바로 한국의 컵라면이다. 대체 왜 뉴욕 공항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라면부터 참깨라면, 불닭, 치즈 등등 수십 개나 되는 컵라면들이 줄지어 있었다. 미국의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에 진작 물린 나에게는 거의 구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나는 결국 컵라면 큰 사이즈를 혼자서 싹싹 비우고서야 만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뉴욕과 인사도 했겠다, 배도 채웠겠다, 기분 좋게 비행기에 탑승하려던 그때, 갑자기 비행기 탑승이 10분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지연 소식에 혼란스러워할 때, 대기 시간은 10분에서 1시간, 2시간으로 점점 늘어났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2시간 반이나 지난 시각에야 겨우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겨우 비행기에 탑승해서 숨을 돌리자마자 승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바로 승객들의 짐 중 일부분이 다른 비행기에 실려, 짐을 며칠 후에나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우리의 짐은 비행기에 잘 실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 비행기가 지연된 이유도 러시아의 화산 폭발 때문에 경로가 변경되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때문에 원래 비행시간은 12시간 남짓이었지만, 17시간이나 걸려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몸도 찌뿌둥하고, 잠을 못 자서 계속 피곤했다.

그런 와중에 더더욱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바로 모든 승객들의 짐이 비행기에 실리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아니, 분명 미국에서는 짐이 실렸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일부 승객들의 짐을 실었다가 무게 제한 때문에 전부 뺐다고 했다. 정말 너무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10일 치의 옷과 온갖 짐이 다 들어 있는데, 캐리어를 며칠 후에나 받을 수 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화가 나기도 했고, 막막하기도 했다. '사진 찍으려고 옷이란 옷은 다 들고 왔는데, 당장 내일 학교에 뭐 입고 가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학교에는 레깅스를 입고 갔다.) 한국에 돌아오면 마냥 편하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 소식 때문에 오히려 여행보다도 다이내믹해졌다.


그렇게 힘든 몸을 안고, 짐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아빠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 아빠는 대체 어느 게이트에 있는 거냐고 물었다. 뭔 일인지는 의아했지만, 우리가 있는 출국장 게이트를 알려주었다. 그러자 저기 어디선가 낯익은 사람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바로 우리 아빠였다. 아니, 지방 출장으로 인해 주말에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빠가 목요일 밤 인천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늦은 저녁, 피곤한 몸으로 짐을 끌고 돌아가야 할 우리가 걱정되어 잠시 올라오셨다고 했다. 그런데 러시아 화산 폭발로 인해 비행기가 지연되며 예정되어 있던 게이트가 바뀌었고,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와 내가 나오지 않아 헤매셨다고 했다. 그때는 진짜 감동이었다. 지방에서 인천까지, 또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는 여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걱정된다고 달려온 아빠한테 너무 고마웠다. 쑥스러워서 말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아빠를 둔 내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결론적으로 짐은 없지만, 따뜻한 가족애를 품은 채 집에 돌아왔고, 나의 길고도 아름다웠고, 힘들기도 했지만 놀라웠던 대서사시, 북미 여행의 엔딩크레디트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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