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From Mom's Heart
이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지난 시간을 되짚었다. 뉴욕의 바쁘고 화려한 거리에서 느꼈던 생동감, 나이아가라의 굉음 속에서 말을 잃었던 순간, 그리고 캐나다의 한낮 햇살 아래 조용히 펼쳐진 거리까지. 모든 장면마다 딸과 나, 두 사람의 시선이 함께 머물러 있었다.
나는 엄마로서, 이 여행이 딸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자꾸만 궁금해졌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속에서 조금은 단단해지길 바랐다. 명문대 캠퍼스를 거닐며 조심스레 미래를 상상했고, 박물관과 기념관에서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함께 마주하며 무게감 있는 질문들을 나눴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여행은 딸아이만을 위한 여정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많은 것을 배우고 내려놓는 시간이었고,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내 모습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때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 앞에서 마음을 다잡는 연습을 했고, 딸아이의 감정을 조용히 지켜보며 조급함 대신 기다림을 선택해야 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걸음을 맞추고, 말보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을 알아가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유연해졌고, 조금 더 단단해졌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딸아이는 또 다른 눈으로 이 여행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일상의 틀을 벗어나,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처음 느낀 당혹감, 그걸 이겨낸 뿌듯함,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친절, 조금은 낯선 음식까지… 딸아이에게는 모든 순간이 새롭고, 시간이 흐른 후에도 또렷이 기억될 장면들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풍경을 간직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억이 ‘함께’였기에 더 특별했다. 때로는 걷는 속도가 달랐고, 시선을 멈추는 지점도 달랐지만, 손을 놓지 않았기에 같은 방향으로 나아올 수 있었다.
요즘 딸아이는 사춘기를 지나며 나와는 또 다른, 그녀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세계가 궁금하면서도, 가끔은 나와 멀어지는 듯해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면, 스스로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려 애쓰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아직은 서툴고 엉성한 걸음일지라도, 그 모든 과정이 결국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리라 믿기에, 나는 종종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의 딸이 자랑스럽고,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지 그 여정이 몹시 기대된다.
이제 이 여행의 이야기와 사진은 가슴 한편에 고이 남게 될 것이다. 언젠가 이 여행을 다시 꺼내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그날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조금 더 깊은 어른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여행을 마음속에 품고 기다려 본다. 딸아이와 나, 그리고 언제나 든든히 곁을 지켜주는 남편과 함께할 새로운 여정이다. 우리 셋이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목적지가 어디든,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을 테니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쌓아가는 또 하나의 따뜻한 풍경을, 다시 한번 맞이하고 싶다.
Through Daughter's Eyes
드디어 이 여행기가 끝났다. 사실 처음에 글을 쓸 때는 여행이 10일이었으니까 10화 정도만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쓰다 보니까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그때 느낀 나의 감정은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최대한 다 적으려고 하다가 이렇게나 길어졌다. 엄마가 처음에 같이 써보자고 제안했을 때 여행기라는 형태의 글을 제대로 쓰는 것이 처음이라서 걱정도 많이 했다. 특히 처음에는 내가 어디를 가는지를 나열하느라 나의 생각과 느낌을 제대로 담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쓴 글이 여러 개 쌓이면서 아주 약간의 감이 잡힌 것 같다. 그대로 글 연재 전보다는 나의 글쓰기 실력이 아주 약간은 상승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여행을 다녀온 지 대략 1년 반 정도 지난 시점에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중간중간 기억이 안나는 부분도 많고 정확히 뭘 했는지 생각나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여행기를 쓸 때 난항을 겪었는데, 집 대청소 중에 우연히 노트 한 권이 떡하니 나왔다. 애초에 엄마가 여행 갈 때부터 이런 형태의 글을 쓰려고 노트테이킹 용으로 가지고 간 것이었는데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랜만에 펼친 그 노트에는 나와 엄마의 흔적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디를 갔고 그래서 어떤 감정을 느꼈고, 하다 못해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사 마신 사소한 얘기까지 가득 담겨있었다. 그 글을 보면서 나는 내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하나둘씩 되새겼다. 그때 나는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내가 기록하지 못했던 수많은 경험들이 떠올랐다. 7살 때 간 일본 여행, 할머니와 동행한 베트남, 사이판 등 여행은 분명 재밌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거기서 뭘 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 북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글을 구상할 때까지만 해도 여행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그랬지만 내가 쓴 노트를 보며 그 예쁜 추억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이 또한 언젠가는 나의 저장공간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브런치 글을 보면서 다시 떠올리고 기뻐하고,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번 여행기는 나에게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덧붙이자면 여행 갔을 때 아빠 생각도 많이 났고 같이 가지 못해 미안했고 또 보고 싶었는데, 다음 여행은 꼭 같이 가서 많이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