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칠이 필요한 나이

탄력 대신 단단함을 선택하며

by 첨예하니

50줄에 접어드니 몸이 하나씩 신호를 보낸다. 예전엔 밤을 새우고 끼니를 거르고 그래도 멀쩡했는데, 이제는 잠을 설친 다음 날이면 눈꺼풀도, 무릎도, 마음도 무겁다. 관절이 소리 없이 삐걱이고, 소화기관은 투정 부리는 날이 잦다. ‘기름칠 좀 해줘’라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켜진다.

오늘도 병원이 일정표 맨 앞줄에 적혔다. 출근 전에, 장보기 전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기 전에도 먼저 들러야 할 곳. 진료 대기실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문득 멀리서 본 것 같았다. 어쩐지 마음이 싸하다. 이게 나이란 건가 싶다가도, 그렇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호르몬 때문이라고 툭 치부해 본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슬픔도, 통증도, 나이도 오늘을 사는 걸 막을 순 없다. 뚜벅뚜벅 병원을 나서며 마음을 다잡는다. 약봉투 한 손에 들고, 또 하루를 산다. 해야 할 일도 있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웃을 일도 분명 있을 테니까.

예전처럼 탄력 있는 몸은 아니지만, 대신 단단한 마음이 생겼다. 거창한 계획보단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안다. 피곤하다고 주저앉지 않고, 아프다고 삶을 멈추지 않는 법도 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살아가는 중’이다.

가끔 기름칠이 필요해졌다는 건, 그만큼 오래, 그리고 잘 달려왔다는 증거다. 그러니 오늘도 뻐근한 어깨를 펴고, 속도는 조금 늦춰도 방향은 잃지 않는다. 웃으면서, 때론 이를 악물면서, 그렇게 또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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