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고로 푸는 딸의 감정 기복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어"를 마주하는 연습

by 첨예하니

딸은 어릴 적부터 극 T 성향, 그러니까 좋고 싫음이 뚜렷한 아이였다.
하고 싶은 건 밤을 새워서라도 해냈고, 하기 싫은 건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 거절하곤 했다.
그 또렷한 기준 덕분에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한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딸이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얘는 자기표현이 확실하니까”라고 생각하며 일상을 지나쳤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서며 상황은 달라졌다.
사춘기의 문턱에 선 아이는 이제 더 이상 '확실한 표현자'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데 눈물이 나”,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어”
이런 말들이 늘어났고,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휘돌았다.


나는 연구자다.
사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해결책을 조립해 내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니 아이의 이런 변화가 처음엔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왜 화가 난 건데?”
“이유는 알아야 해결하지.”
나는 늘 그랬듯 문제의 구조를 파악하려 들었다.

그런데 딸은 울면서 말했다.
“엄마,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그 말에 나는 문득 멈춰 섰다.
사춘기의 아이는 지금 ‘논리적 구조’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는 중이구나.
그건 분석이나 해결이 아니라 동행이 필요한 문제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감정을 과학적으로 풀어보려는 아이

아이의 특별한 점 하나.
이 감정의 소용돌이조차 논리와 과학의 언어로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어떤 호르몬 때문에 이러는 걸까?”
“뇌에서 도파민이랑 세로토닌이 줄어들면 우울한 건가?”

딸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이 질문이 반가웠다.
정확한 답을 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기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언어화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함께 관련 책을 찾아 읽었고, 감정과 호르몬, 뇌와 자율신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딸은 “감정은 생물학적 반응이라는 걸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엄마로서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훈계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함께 읽고, 함께 이해하려는 마음이
아이에게 작은 힘이 된 것 같아서.


함께 휘청이고, 함께 다듬어가기

물론 그렇다고 언제나 평온한 건 아니다.
감정의 파도는 여전히 출렁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 파도를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타고 넘어야 할 것’으로 보기로 했다.

딸은 여전히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 뒤에 숨은 진심,
“나도 불안하고 낯설어”라는 마음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이제 묻지 않는다.
“왜 화났어?” 대신
“힘들었겠다”라고 말하려 한다.

완벽한 대화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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