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너무 과해"라는 말에 대하여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너무 앞서

by 첨예하니

며칠 전, 서울대에서 2028학년도 대학입시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나는 그 발표를 단순 뉴스로 넘기지 않았다.
자료를 찾아보고, 발표의 숨은 맥락을 분석하고,
앞으로 아이에게 어떤 선택이 필요할지,
이게 단순한 대입 제도 변화인지, 아니면 새로운 신호탄인지
곰곰이 고민하고 정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잔뜩 준비한 설명을 들고 아이 앞에 섰다.
“딱 10분만 집중해서 들어봐.”
하지만 아이는 다른 일로 바쁜 얼굴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 중요한 이야기를 왜 이렇게 흘려듣지?’ 하고 끓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순간 아이가 먼저 말했다.

“엄마는 너무 과해.”

말 그대로 선공을 당한 느낌이었다.


아이의 ‘과해’라는 말속에 담긴 마음

솔직히 처음엔 그 말이 꽤 쓰라렸다.
나는 아이를 도우려는 마음이었고,
늘 그렇듯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하지만 아이의 그 말엔 단순한 푸념만 있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는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엄마도 할 일이 많은데, 나 도와주느라 너무 애쓰는 거 같아서 미안하고 안타까웠어.
그런데 엄마가 공부해서 정리해 주는 입시나 진로 정보는 사실 정말 고마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아이의 말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부담과 고마움이 함께 얽힌 마음.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너무 앞서 가버린 보살핌이 있었다는 사실도.


사실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신호

고백하자면,
이런 말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아이의 초등 고학년 무렵,
나는 이미 ‘엄마가 너무 많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적 있다.

그때마다
‘그래, 덜어내자. 조금은 느긋해지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나도 모르게 또 쫓기듯 앞서 달리곤 했다.
입시, 진로, 인간관계, 학습 습관...
하나라도 놓칠까 봐 걱정이 먼저 앞섰던 것이다.


지금은, 조금 더 느긋한 엄마가 되었다고 믿고 싶다

지금 나는 조금은 다르다.
예전처럼 모든 걸 ‘이건 이래야 해’라고 단정 짓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땐 어떻게 하고 싶어?” 같은 말이 더 많이 나온다.
엄마로서 완벽해지기보다,
사춘기 딸의 일상을 옆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나도 모르게 강한 어투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땐 ‘또 그랬구나’ 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리고 마음속에 이렇게 적는다.




내가 도와주려는 마음이 아이에겐 짐이 되지 않도록
아이의 속도와 방식도 하나의 삶으로 존중할 것
그게 진짜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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