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 통할 때, 우리는 함께였지만 혼자였다

완벽한 엄마라는 환상과 사춘기 딸의 눈물

by 첨예하니

나는 대체로 강한 사람이다.

교육이든 생활이든 엄마 역할이든.

‘잘해야 한다’, ‘흐트러지면 안 된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내 삶의 기본값처럼 자리 잡아 있었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그랬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제대로 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사춘기 초입의 딸과 티격태격하는 와중에도,

내 방식이 틀리진 않았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사춘기의 얼굴에 처음 보인 낯선 감정


딸아이는 평소 강단 있는 아이다.

자기주장도 분명했고, 논리적인 말도 잘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늘 ‘잘 소통하는’ 모녀라고 생각했다.

서로 조금 강한 스타일이었지만, 큰 다툼 없이 잘 지낸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딸의 얼굴에서

‘억울함’ 같은 게 스치듯 보이기 시작했다.

표정은 잠깐이었고,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처음엔 ‘아, 사춘기구나’ 하고 넘겼다.

하지만 자꾸 반복되자 나도 불편해졌고,

결국 말해버렸다.

“그 표정 뭐야? 무슨 말이든 제대로 해.”

그러자 딸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어차피 내 말 들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자꾸 묻는데.

내 감정도 맘대로 표현하면 안 돼?”

아이는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했던 거였다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껏 우리는 소통이 잘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가 알고 싶었던 건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아이의 결과였던 것 같다.

이해했다고 믿었던 순간마다,

딸은 단지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서’ 맞장구를 쳤을 뿐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그 모든 건

“이야기해봤자 들어주지 않을 거니까”

라는 깊은 단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말이 안 통할 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혼자였다


생각해보면

딸과 나는 늘 ‘함께’ 있었지만,

그 말은 ‘같은 입장’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말이 오가고, 웃고 떠들었지만

그 중심에 감정의 교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고

딸도 자기 방식대로 날 피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말을 속으로 따라 해보세요.”


며칠을 끙끙 앓듯 고민하다.

어느 날 누군가가 조용히 말했다.

“아이의 말을 말로 바로 답하지 말고, 속으로 따라 해보세요.

그러면 아이의 마음이 들릴 수도 있어요.”


그 말은 나를 정지시켰다.

속으로 따라 한다고?

하지만 막상 해보니… 정말 달랐다.

딸이 툭 내뱉는 말 속에서

“난 지금 지쳤어.”

“제발 좀 들어줘.”

“이건 그냥 속상한 거야.”

라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바꾼 건, 내 태도였다.


이후로 나는 결심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느슨한 동반자가 되자고.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

같이 경험하고,

같이 울고 웃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질문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사춘기의 감정 기복이 올라올 때는

굳이 말을 붙이기보다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뮤지컬을 같이 보거나,

조용히 따뜻한 음료를 한 잔 건네는 것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함께였지만 혼자였던 시간, 이제는


사춘기의 시작은 충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충돌 대신, 간격을 느끼고

그 간격을 조심스레 좁혀보려는 노력의 시간이다.


우리는 여전히 다르고,

때로는 또다시 말이 안 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의 마음은, 기다려야 들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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