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첫 번째 미팅에서 집 외부의 모양을 결정했다면, 두 번째 미팅은 집 내부의 모습을 결정할 시간이었다. 건축사사무소의 회의실에 도착하니 세 개의 평면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평면 모형도 함께 놓여 있었다.
건축가는 2차원 공간에 새겨진 평면도와 3차원 공간에 새겨진 모형을 함께 활용해서 아내와 나에게 설계 의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면도는 소중한 공간들이 새겨진 보물지도?
세 개의 평면도에 대한 설명을 마친 건축가가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넸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항상 1번이 저희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안이에요."
"네.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동안의 미팅에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아내와 나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도 다양성을 고려해서 다른 선택지도 드려야 하기에 항상 몇가지 안을 더 만들어요."
"네. 1번이 가장 좋아 보이긴 하는데, 선택지가 있으니 매번 고민이 되기는 해요."
다양한 안을 만드는 건축가의 노고에 감사했지만, 그만큼 우리의 고민도 커졌다.
"꼭 하나의 평면을 고르실 필요는 없고요. 여러 평면을 조합해도 되고요. 일부만 변경하셔도 돼요."
"네. 집에서 아내와 함께 고민해 볼게요."
두 번째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우리의 손에는 세 개의 평면도와 모형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평면 수정에 대한 무한의 자유가 부여되어 있었다.
세 가지 평면 모두에서 건축가의 의도와 고민이 느껴졌다. 그만큼 좋은 설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우리가 지을 집은 하나뿐이고,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요일에 미팅을 하고 주말 내내 고민했지만 딱 하나의 평면을 고를 수가 없었다.
설계를 맡긴 건축사사무소의 소장님이 자주 하는 말이 생각났다.
"건축주분들이 정말 똑똑하세요. 이런 생각을 하시고 말이에요."
그동안 설계한 건물들에서 예시를 들어줄 때, 건축주의 아이디어가 나오면 하는 말이었다. 아내와 나도 이제 똑똑한 건축주가 될 순간이 온 것 같았다. 평면도를 모두 펼쳐놓고 우리의 필요에 맞춰서 이리저리 수정을 시도할 때였다.
건축가뿐 아니라 건축주도 고민이 필요하다
아내와 나는 우선 바탕이 되는 평면도를 결정했다. 두 가지 평면을 놓고 고민했지만, 가장 선호하는 중앙 계단이 있는 평면을 바탕으로 쓰기로 했다. 계단이 중앙에 있어야 동선이 짧아지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다음으로 필요 없는 공간을 하나씩 제거했다. 먼저, 2층에 존재하는 모든 테라스를 지웠다. 식집사인 아내를 위한 가드닝 테라스, 빨래를 말리는 데 사용하는 테라스, 조망용 테라스 등 다양한 테라스와 미련 없이 작별했다. 우리가 요청한 공간이 아니었고, 사방으로 다른 집과 마주할 테라스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1층의 툇마루와 다이닝 공간 일부도 제거했다. 남쪽에서 오는 햇빛을 가리고, 마당의 크기를 줄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축가가 우리를 생각해서 추가한 공간이었기에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이 집에서 평생 살아야 할 사람인 우리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다이닝 공간이 줄어들었기에 평면도의 아일랜드 주방과 식탁의 배치를 변경해야 했다. 아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고쳐서 평면도에 다시 그려 넣었다. 이외에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부분을 직접 수정했다. 마지막으로 고치고는 싶지만 수정하기 힘든 부분은 글로 정리했다.
- 아내의 드레스룸이 지금보다 컸으면 합니다. 필요하다면 남편방을 줄여도 좋습니다.
- 세탁실은 분리형 욕실을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접근했으면 합니다.
- 다락을 포함해서 50평 내외의 집을 요청했는데요. 60평은 너무 큽니다. 조금 줄였으면 합니다.
우리의 요청 사항을 받은 건축가는 결국 평면의 많은 부분을 다시 그려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아내와 카톡을 통해서 여러 번 의견을 주고받았다. 건축가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우리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했다.
천천히 아름답게 완성돼 가는 우리의 평면도 좋았지만, 건축가와 의견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도 재미가 있었다.
건축 상담에서 다른 건축가가 집 짓는 과정을 즐기기를 바란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집 짓기라는 재밌는 길 위를 내가 천천히 걷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집 짓기라는 재밌는 길 위를 내가 천천히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