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추운 겨울을 싫어한다. 몸이 약해서인지 겨울만 되면 이런저런 잔병치레를 한다. 반대로 봄이 오면 정말 즐거워하는데, 식물들이 짙은 녹색의 생기를 되찾기 때문이다. 이맘때는 외출도 잦아진다. 꽃을 피워 올리는 튤립과 수선화 등을 찾아서 집 근처의 공원을 자주 찾는다.
절정은 아파트 입구에 위치한 커다란 벚나무가 꽃을 피울 때이다. 따뜻한 남향의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해서인지 이 벚나무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꽃을 틔운다. 이때부터는 매일같이 집 근처의 호수공원을 찾는다. 아내와 손을 잡고 목련, 수산화, 튤립, 벚꽃 등 다양한 봄날의 꽃을 감상한다.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귀여운 강아지들도 눈을 즐겁게 한다.
어렸을 때는 꽃 자체의 예쁨과 아름다움에 시선이 갔지만, 요즘은 꽃이 머금은 생기에 더 시선이 간다. 세월이 하나둘 내 몸에 내려앉음을 느끼게 되면서 하나의 생명이 머금은 생기가, 그리고 생명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았다. 꽃이 뿜어내는 생명력이 봄날 호수의 수면에서 반짝이는 윤슬만큼이나 눈부시게 빛난다.
이십 대 초반 대학실절에 스페인 문학을 교양으로 수강했다. 그때 교수님이 참 특이한 분이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토론하지 않는 것을 싫어했다. 학생들이 더 많이 말하게 만들기 위해서 질문에 답하면 기말시험을 면제해 줄 정도였다. 이 파격조건에 혹했던 나도 용기 내서 하나의 질문에 답했다.
"성장미인(盛裝美人)과 담장미인(淡粧美人) 중에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 얘기해 보겠나."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내 대답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성장미인이고 담장미인이고 무엇이 중요하겠어. 중요한 것은 생기(生氣), 젊음이 머금고 있는 그 자체의 생명력이 뿜어내는 아름다움 아니겠어."
교수님은 한국인이면서도 스페인과 유럽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은 시인이었다. 생명력이 아름답다니... 스무 살 무렵에는 잘 이해가지 않는 말이었다. 선문답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마흔이 넘은 지금은 교수님이 어떤 의도와 생각, 그리고 느낌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한편으로는 조금 쓸쓸하기도 하다.
꽃피는 봄은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계절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때때로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황사와 미세먼지이다. 햇살이 좋은 날이라도 공기가 나쁘면 밖에 나가기 꺼려질 때가 있을 정도이다. 집 안에 있더라도 환기하기가 쉽지 않아서 답답함을 느낀다.
나쁜 공기질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장치가 하나 있다. '전열교환기' 또는 '열회수 환기장치'라고 불리는 기기이다. 십여 년 전에는 패시브 주택의 열효율을 높이기 위한 필수 기기로 주로 알려졌었다. 이때는 전열교환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열효율보다는 '환기'가 더 강조되는 기기로 변모했다. 우리나라는 타국 대비 난방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나라이기도하고, 열회수보다 환기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열회수 환기장치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
열회수 환기장치는 2006년부터 1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에 설치가 의무화되었고, 점차 의무 설치 대상이 확대되었다. 전세지만 내가 살던 아파트,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설치가 되어 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창문으로 환기를 하기 힘든 날에는 종종 사용했기에 나에게는 친숙한 기기였다.
장점은 간명하다. 난방과 냉방의 효율을 높여주고, 필터를 통한 공기정화 및 환기 기능을 제공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무조건 설치해야 할 기기처럼 보이지만 단점도 있다.
첫째는 소음이다. 기기마다 소음의 정도가 다르지만 예민한 사람이라면 거슬릴 정도의 크기일 수 있다. 특히, 열회수 환기장치가 설치된 곳과 가까울수록 소음의 정도가 심하다. 둘째는 높은 초기 설치비용이다. 2층 단독주택의 경우, 기기와 배관 구입 및 설치 비용으로 천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셋째는 주기적인 필터 교체와 청소이다. 약 6개월마다 청소와 필터 교체가 필요하다. 필터 구매 비용은 크지 않지만 청소는 은근히 귀찮은 일이다.
집 건축에 할당된 시공비 예산이 빠듯했기에, 높은 초기 설치비용이 부담됐다. 여러 사정과 겹쳐서 설치를 한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설치하기로 했다. 우리집의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가가 설치를 추천했다. 자신의 단독주택에도 열회수 환기장치를 설치했기에 믿음이 갔다.
무엇보다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우리집이 2층 집이라는 것이었다. 집을 전체적으로 환기하려면 계단을 오가며 각층과 다락의 창을 모두 열어야 하는데, 생각해 보면 꽤나 귀찮은 작업이다. 환기는 두 시간에 한 번씩 하는 것을 권장한다. 두 시간마다 이 일을 반복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때때로 창을 열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의 환기는 열회수 환기장치에 맡기기로 결론을 내렸다.
환기를 위해 1층과 2층을 오가며 모든 창을 열기는 쉽지 않다
설계를 진행하면서 생각지 못한 열회수 환기장치의 단점을 알게 되었다. 열회수 환기장치의 배관이 천장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배관이 차지하는 길이만큼 천장이 낮아지는데, 약 15cm 정도를 손해 보아야 했다. 천장고 15cm가 무슨 큰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내와 나에게는 꽤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의 요청사항 중 하나는 높은 천장고였다. 처음에는 3m를 생각했지만 건축가와 논의를 통해 2.7m로 줄였다. 일반 아파트보다 30~50cm 정도 높게 해서 개방감을 높일 생각이었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천장고 2.7m를 유지하기 위해 층고를 15cm 더 높이거나, 층고는 그대로 두고 천장고를 2.55m로 줄이는 것이었다.
2.7m의 천장고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히 좋지만 비용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각층마다 15cm씩, 2층집의 경우 늘어난 30cm만큼의 건축비가 더 든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층고가 3m인 2층 집이라면 높이가 약 5% 늘게 된다. 이 말은 외벽 벽체 시공비가 5% 증가한다는 말과 같다. 결과적으로 열회수 환기장치의 초기 설치비용에는 늘어난 시공비를 더해야 한다.
아내와 나는 비용과 상황을 고려해서 다시 한번 숙고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고민했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높은 천장고를 포기할 수 없었고, 늘어나는 건축비는 감수하기로 했다. 정말이지 건축비의 폭격은 끝이 없다.
설계를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문제, 내가 잘 모르는 문제가 끝도 없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도 좁고 험하더라도 언제나 길은 있으니, 너무 앞서 걱정하지 말자.
건축비의 폭격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