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주의 중심이 나라면, 집의 중심은 주방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결혼을 안 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結婚しないんじゃなくて、できないんじゃなくて、したくないだけ。)


"결혼을 하게 되면, 수입을 아내와 자식과 나눠야 하잖아."

(結婚すれば、稼いだ金を妻や子供と分けなきゃいけない。)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結婚できない男)'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이다. 요즘은 과거보다 많이 개방적이고, 개인의 삶과 행복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말을 하면 주변에서 싫은 소리 듣기 십상일 것이다. 당장, 우리 부모님도 잔소리 폭격을 하실게 틀림없다.


이런 드라마가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6년에 나왔다는 사실은 꽤 놀랍다. 그것도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더 보수적인 일본에서 말이다. 주인공이 이런저런 논란의 대사를 툭툭 뱉기는 하지만, 특유의 유머와 재치 있는 연출로 상황을 유쾌하게 만든다.


비혼을 고수하는 주인공은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혼자서' 무언가를 즐긴다. 취미로 DVD를 빌려 보고, 비싸 보이는 오디오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정성스레 한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자신의 시간을 정성스레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


대면주방.jpg 아직 결혼 못하는 남자 (2019)


"혼자 먹는 식사가 가장 맛있어."

(一人で食べる食事が一番うまい。)


"손을 대충 놀리지 않아.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手を抜かない。誰が見ていなくても。)


요리를 자주 하는 주인공은 위와 같은 대사를 통해서 요리와 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혼을 고수하는 주인공의 직업은 건축가인데, 설계 시에 주택의 중심은 '주방'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집에도 '대면형 주방'이 넓게 펼쳐져 있다. 2006년 작품에 요즘 유행하는 대면형 주방이 나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아내와 나도 주인공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집의 중심은 '주방'이었으면 한다. 거실이 중심인 대부분의 아파트와 다르게 말이다. 물론, 넓게 보면 거실, 식당, 주방이 하나로 이어진 'LDK'를 집의 중심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집의 중심은 주방

도심지에 이층집을 짓는다면, 대부분 1층에 방을 하나는 둔다. 계단을 오르기 불편한 가족 구성원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집의 1층은 LDK와 방 하나로 이루어진다. 범용성도 좋고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구성일 것이다.


예산의 압박으로 우리집의 면적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LDK 공간은 최대한 넓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한 층 전부를 주방을 비롯한 LDK 공간에 할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방을 모두 2층으로 올리고, 1층에는 LDK와 분리형 화장실 하나만 두었다.


아내와 나는 '결혼 못하는 남자'의 주인공처럼 대면형 주방을 원했다. 주방의 중앙에 커다란 아일랜드 주방을 놓고, 인덕션을 올려서 쓰기로 했다. 냉장고는 보조주방에 넣어서 문으로 감추었다. 냉장고가 아무리 예쁘더라도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예쁘고 깔끔하기 때문이다.


주방을 둘러싼 우리의 의견이 모두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키큰장을 놓고 소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주방 스타일은 '4세대 주방'이었다. 아일랜드 주방을 제외한 모든 주방 요소를 보조주방으로 숨기고, 문으로 가려서 깔끔하게 보이기를 바랐다.


아내도 설계 시작 전에는 내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평면도를 보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보조주방이 너무 작아서 수납공간이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아내는 현실적으로 벽면 한쪽을 모두 가리는 키큰장을 놓는 '3세대 주방'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 3세대, 4세대 주방의 구분은 김창균 건축가의 '평면의 정석'을 참고했다. (아래 이미지 참조)

3세대 주방.PNG
4세대주방.PNG
3세대 주방(좌) - 4세대 주방(우)


나는 키큰장이 싫다. 존재하는 공간을 가득 채워서 지운다. 전체적으로 공간감을 줄이고, 답답하게 만든다. 아내와 논의 끝에 키큰장 대신 벽 쪽에 하부장만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추가로 하부장 위에는 넓게 창을 만들어서 공간감이 커지도록 했다.


후드 설치도 고민을 많이 했다. 인덕션이 주방의 중앙에 있기에 후드를 설치하면 시야를 가리고, 미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나는 건강을 생각해서 보기 싫더라도 성능 좋은 후드를 설치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내의 강력한 주장으로 천장형 후드를 두지 않고, 후드일체형 인덕션을 쓰기로 했다.


깔끔한 대면형 주방을 구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집의 설계가 진행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할 때마다, 집짓기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집이 겉으로 보기에 깔끔하고 예뻤으면 한다. 하지만, 집은 결국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기능을 갖춰야 한다. 심미와 기능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이 고민해 줄 아내와 전문적인 조언을 해줄 건축가가 있다는 점은 참 다행이다.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함께 해준 아내와 건축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심미와 기능 사이에서 균형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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