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하얗고 보드라운 우리집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작년 겨울의 추운 아침, 건축 예정 부지에서 건축가를 만났다. 함께 주변 환경을 둘러보고 근처 카페로 이동해서 설계 계약을 맺었다. TV에서만 보던 유명 건축가를 직접 만나다니 신기했다. 심지어 우리집을 설계해 준다고 하니 조금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3주에서 한 달 간격으로 서울에 위치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 미팅을 가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한 첫날에는 여섯 개의 집 모형을 만났다. 커다란 쇼핑백에 모형을 모두 담아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 테이블에 모형을 올려놓고, 고민을 거듭해서 'ㄱ'자 모양을 골랐었다.


그 뒤로는 집 안의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 평면도와의 씨름이 계속되었다. 건축가가 준비해 준 여러 평면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도 어려웠고, 수정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내 집의 설계 과정에 스스로 참여한다는 것이 즐거웠지만, 여러 가지 선택의 과정에서 고민도 쌓여만 갔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이 빠르게 흘러갔다. 설계를 시작하고 어느덧 네 달여의 시간이 지났고, 네 번째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건축사사무소의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완성된 평면도가 놓여 있었다.


오늘도 2차원 평면도를 보나 싶을 때, 테이블 앞에 놓인 커다란 TV 화면에 3차원으로 모델링 된 우리집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단번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우리집의 첫인상은 '하얗고 보드랍다'.


하얗고 보드라운 우리집
my_house_3.PNG Twinmotion으로 렌더링 한 이미지

스케치업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모델링 된 우리집을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꽤 감동적이었다. 2차원 평면을 볼 때는 상상력이 많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화면 속에 보이는 우리집의 외관은 꽤 아름다웠고,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건축가가 완성한 집의 외관은 그동안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나았다. 외장재로 하얀 타일이 쓰였고, 지붕은 밝은 회색이었다. 포인트로 집의 중간띠와 필로티가 밝은 색의 목재로 감싸져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도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측 벽의 한쪽이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었고, 곳곳의 창도 곡선과 아치를 이루었다. 필로티와 담장에도 곡선은 빠지지 않았다.


아내가 항상 신경 쓰던 햇살마당도 남쪽을 바라보며 햇살을 맞이했다. 화면 속에는 빈 공간이 많지만, 머지않아 아내가 식물로 가득 채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방 다락에 이어진 옥상 테라스도 작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열려 있었다.


위 이미지의 디자인 말고도 후보 디자인이 두 가지 더 있었다. 목재가 더 많이 들어간 집과 아이보리색 타일이 전체적으로 쓰인 집이었다. 두 후보 모두 예쁘고 좋았지만, 하얗고 보드라운 디자인이 역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내도 마음에 들어 해서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집의 디자인을 바로 선택했다.


아내가 미팅 마지막 즈음에 나에게 물었다.


"집 디자인 어때? 그동안 많이 걱정했잖아."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너무 좋은데, 내 생각보다 훨씬 좋아."


네 달 동안의 고민이 사라지는 홀가분하고 즐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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