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우리집 지붕 색상을 정부에서 정해준다고요?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커다란 모니터에 표시된 우리집의 하얗고 보드라운 모습을 감상하던 아내가 질문을 하나 던졌다.


"지붕 색상을 조금 더 밝게 할 수 있을까요?"


건축가가 스케치업에서 바로 변경해 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지금이 사용 가능한 색상 중에 가장 밝은 색을 쓴 거예요."

"네? 사용 가능한 색상이 따로 있나요?"


"네.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에 색상이 정해져 있어요."


대답하면서 스케치업 화면의 한쪽에 표시해 둔 색상표를 보여 주었다. 지붕뿐 아니라 건물 외벽의 색상도 지정되어 있다고 부연했다. 논리적으로 이해는 됐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 집 지붕 색상도 내 마음대로 못 한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내 토지가 지구단위계획구역에 속해 있다면,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을 따라야 한다.


fifth.PNG Twinmotion으로 렌더링 한 우리집

사실 나는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이런저런 책과 자료를 많이 읽고 봤다. 그중에 낮은 담장을 시행지침으로 강제해서 생긴 문제가 꽤 재미있었다.


건축주들은 낮은 담장을 받아들이는 대신 건물의 외벽을 담장처럼 사용해서 건물을 지었다. 그 결과로 중정 형태의 성채 같은 단독주택이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 '낮은 담장'의 원래 목적은 이웃 간의 대화 및 교류 유도였지만, 돌아온 결과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어서 토지 매매 전에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을 구해서 미리 담장 부분을 읽어 보았다. 다행히 우리땅은 담장을 2m까지 칠 수 있었다. 담장을 믿고 집의 모양도 남쪽과 서쪽을 보고 열린 'ㄱ'자로 정했다. 마당을 최대한 넓게 쓰기 위해서였다.


이때 시행지침의 다른 내용도 빠르게 훑어보기는 했었다. 지붕모양, 건폐율, 용적률, 일조사선, 높이 제한 등 정말 많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에서 작성한 465쪽의 정말 지루하고 긴 문서였기에 자세히 보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건물 외벽과 지붕 색상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설계 도중에 알게 된 것이다.


아내는 지붕 색상을 진한 갈색이나 녹색으로 해서 집에 포인트로 삼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지붕 색상을 변경할 수 없어서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정말 다행히도 아내는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고,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내 토지에 적용되는 지구단위계획이 있는지는 '토지이음'이라는 정부 웹사이트에서 쉽게 조회할 수 있다. 시행지침 또는 건축조례의 애매한 부분을 문의할 수 있는 지역 도시정책과의 전화번호도 함께 표시된다. 토지의 지번만 알면 확인 가능하기에 매입 전에 확인해 보기를 추천한다.


정부가 정해준 우리집 색상
색채범위.PNG
색채_계획.PNG
지구단위계획 시행지침에서 지정한 우리집의 색상

한 마을에 있는 건물들의 색상과 모양이 일정 부분 통일성을 가지면 아름답고 예쁘게 보인다는 것은 알고 있다. 유럽 여행을 다니며 그런 마을들을 관광 삼아 여러 번 방문했었다. 예를 들면, 붉은 지붕이 아름다웠던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 지브리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지였던 프랑스의 콜마르, 강렬한 색상의 외벽이 아름다웠던 이탈리아의 부라노와 무라노 섬 등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지구단위계획을 작성한 사람들도 이런 마을 또는 도시의 통일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살기 바쁜 건축주가 이런 지침을 모두 살펴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설계 중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때로는 내가 꼭 지켜야 하는 강제 사항이고, 때로는 시청 공무원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는 사항도 있다. 이때마다 나에게 친절히 설명해 주고, 건축주를 대신해 시청 공무원에게 문의해 주는 건축가의 존재가 든든하고 고맙다.


아내와 나의 집이 어떻게 완성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새로 지어진 집에 입주하는 것도 아직은 먼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집에서 살게 된다면 때때로 우리집을 설계해 준 건축가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건축주에게는 건축가가 필요해
체스키.jpg 통일된 붉은 지붕이 아름다운 체스키크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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