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창호는 맞춤 제작입니다!

나, 아내, 고양이, 그리고 묘화당(猫花堂)

by 소한

친숙한 삼각형 모양의 박공지붕, 하얀색 타일로 둘러싸인 부드러운 곡선의 외벽, 그리고 외벽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세로무늬의 띠. 우리집의 외관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이다. 이를 결정하기까지 건축사사무소와의 4번의 회의, 약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은 야속하게도 가속화하기만 한다. 이는 나이에 따른 경험과 기억의 차이에서 온다. 어릴 때는 하루하루가 새롭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 투성이라서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이것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나이를 먹으면 어제 먹은 음식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그렇지 않다. 처음 먹는 짜장면, 피자, 햄버거, 케이크 등 수많은 새로운 음식들이 머릿속에 또렷이 남는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학교에 가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날 때마다 만나는 사람도 변한다. 회사에 나가기 전까지 우리의 인생은 새로운 경험과 변화 속에서 바쁘게 흐른다.


이와 달리 지나온 삶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경험은 적어지고 인생은 바쁘기보다 느리게 흐른다. 때로는 지루할 정도로 말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낯설지 않다. 하루를 보내고 시간이 지나도 머리에 남는 새로운 기억이 거의 없다. 시간이 지나 기억을 되돌아봐도 떠오르는 것이 그다지 없는 기간이 많아진다. 나이가 먹어서 새로 쌓이는 기억이 적어지는 만큼 시간은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시간은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를 알게 된 이후,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 위해 가끔 노력한다. 새로운 취미를 가져 보기도 하고, 새로운 운동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많이 하는 것은 여행이다. 아내와 함께 두 달에 한번 정도 여행을 간다. 되돌아보면 확실히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경험이 나에게 새로운 시간을 만든다. 어쩌면, 단독주택을 짓기로 결정한 것도 나의 이런 무의식과 조금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첫 집의 설계에 참여한 4개월여의 기간은 나의 기억에 아로 남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속을 조금은 늦춘다.


집짓기라는 새로운 경험이 나의 시간 유속을 늦춘다

다섯 번째 미팅의 주제는 '창호'였다. 창호는 단독주택의 시공비 중에 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아마도 벽체를 제외하면 단일품목으로는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그만큼 단독주택 집짓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나의 생각은 단순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를 위해서 되도록 단열 성능이 뛰어난 창호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


미팅을 시작하고 의례적인 인사가 오가고, 건축가가 창호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창호는 기성품이 없어요. 모두 맞춤 제작이에요."


순간 '건축탐구 집에는 기성품을 써서 시공비를 낮췄다는 분이 있던데요?'라고 물을 뻔했다. 하지만, 건축가가 거짓말을 할리 없다는 생각에 의문을 걷어내고 설명에 집중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독일식 시스템 창호'는 거의 모두 맞춤 제작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단열, 기밀 성능을 최대화하기 위해 벽체를 구성하는 단열재, 외벽 마감 등과의 정밀한 연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통 현장 실측 후 맞춤 제작된다.


시스템 창호가 아닐 경우는 일부 기성품이 있다. 아파트에서 흔히 쓰이는 PVC 이중창이 그 예이다. 이런 창을 사용할 경우, 가격도 더 저렴하다. 하지만, 커다란 아치창, 곡면으로 접히는 창같이 특수한 창이 있는 우리집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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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의 평범하지 않은 창


건축가가 우리에게 가장 열심히 설명한 부분은 창호의 프레임이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고, 연교차가 크고, 장마에 대설까지 날씨의 변동이 크다.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건축물에게도 가혹한 환경이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옷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는 열대나 한대 지방의 사람들처럼 한 가지 스타일의 옷을 일 년 내내 입을 수 없다. 여름과 겨울이라는 정반대 되는 날씨를 대비하기 위해 적어도 두 가지, 실제로는 더 다양한 옷을 갖춰야 한다. 연교차가 적은 나라의 사람들에 비하면 적어도 2배의 의류비가 필요한 셈이다. 건물도 마찬가지이다. 여름과 겨울의 날씨에 모두 대비해야 한다. 단열과 기밀은 기본이고, 에어컨부터 보일러까지 모두 갖추어야 한다. 시공비가 비싸질 수밖에 없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집짓기를 고민하면서 사계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오랫동안 막연히 다양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사계절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계절은 우리에게 생각보다 큰 비용을 청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계절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사계절이 집짓기의 비용을 높인다

아내는 예쁜 목재 창호를 쓰고 싶어 했지만, 가혹한 날씨 환경 때문에 이는 불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 창호 프레임에는 주로 두 가지 재질이 쓰인다. PVC와 알루미늄이다. 두 재질의 가장 큰 차이는 가격이다. PVC가 알루미늄에 비해 크게 저렴하다. 일반적인 아파트의 창호가 대부분 PVC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축가는 알루미늄 창호를 강하게 추천했다. 5번의 미팅 동안 이렇게 강하게 추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격이 문제라면 중소기업의 알루미늄 창호라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할 정도였다. 여전히 PVC 창호보다는 비싸지만 가격 차이가 많이 줄어든다고 했다.


알루미늄 창호의 PVC 대비 가장 큰 장점은 내구성이다. PVC 대비 단단하기에 프레임을 더 얇게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심미적으로 보기 좋고, 집이 고급스러워 보인다. 단열에는 특별한 장점이 없다. 예를 들어, 아파트에 있는 PVC 이중창을 사용하면 알루미늄 창호의 1/3 이하의 가격으로 같은 단열 성능을 얻을 수 있다.


아파트가 싫어서 단독주택을 짓는데, 아파트 같은 스타일의 집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건축가의 제안대로 알루미늄 창호로 하기로 결정했다. 단열까지 고려해서 '독일식 3중 시스템 창호'가 우리의 최종 결정이었다. 아쉽게도 빠듯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유명 브랜드의 창호는 쓸 수 없다. 중소기업의 제품도 품질이 좋기를 바랄 뿐이다.


알루미늄 창호는 튼튼하고 예쁘고 비싸다

미국식 vs 독일식 시스템 창호에 대한 설명 참고 (전원속의 내집)

- https://blog.naver.com/greenhouse4u/222072702009


독일식 3중 시스템 창호 설명 참고 (자재위키)

- https://jootek.com/wiki/articles/1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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